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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Aug 30. 2024

아이가 소변실수를 한 날 아침

2024년 8월 30일 금요일 더움

오늘 아침 남편은 뚱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어젯밤에 아이가 소변실수를 해 한밤중에 가 이상하고 축축한 낌새를 채고 내가 아닌 남편에게로 굴러들어 갔고 잠결에 상황을 알아챈 나는 이왕 아이가 나에게 오지 않았으니 그 김에 오줌이 흥건한 옷과 이부자리를 처리해 줄 의무를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한밤중에 조금은 투덜거리며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오줌이 스민 아이 옷 물세탁을 해 놓았다. 한밤중의 일처리는 언제나 그것이 크든 작든 생각보다 큰 체력의 소모를 요구한다. 그냥 놔뒀어도 잠결에 냄새는 좀 났겠지만 아침에 처리해도 그만인 것을 애써 밤중에 하느라 애쓴 것이다. 나는 아침준비를 묵묵히 했을 뿐 잘했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실수한 아이를 향해 타이르는 말도 특별히 하지 않았다. 약간의 사소하기도 한 불편한 사건으로  균형이 깨어진 아침은 그렇게 남편의 찌뿌둥한 얼굴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에 가족 구성원 중 엄마의 '괜찮아 토닥토닥'의 메시지는 남편을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절대 불가결한 필수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나는 그 순간을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 가족 구성원의 수고로움을 칭찬하고 미안해하고 또는 고마워해야 관계가 돈독해지고 사는 맛이 느껴지는 그 순간을 나는 그냥 놓쳐 버린 것과 같았다. 아침에는 늘 그렇듯 피곤하고 한 열 두 계단 다운된다는 핑계로 나의 입은 늘 무겁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조금은 친밀한 관계가 떨어져 간다는 인식은 마음 한편에 어느새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의 양식도 겸사겸사 쌓을 겸 십오 년 동안 읽지 않았던 거의 새책과 다름없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아주 조금씩 읽어 보는 중이다. 십오 년 동안 읽히지 않았던 책이 책장 속에 조용히 내색도 않고 제목만 우두커니 시야에 들어왔던 책이 이런 우연한 순간에 빛을 발할 줄이야.

삶을 공유하고 있는 가족 또는 누군가와의 관계는 모른 채 하려야 할 수 없는 무의식 속에서 또는 의식적인 생활 속에서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둥그런 배가 미웠고 거실에서 걸어 다니는 발걸음이 보기 싫었고 뭐가 없다고 찾아줄 수 있냐는 요청이 점점 싫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지금 관계를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너무 가볍고 일상적인 표현으로 넘겨 버리지 않는 적당한 표현이 있을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예를 들어 아주 의미가 없는 영에서 최고로 돈독한 1까지 수학적 수치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영과 일 사이 어느 중간 지점에서 맨 처음 시작하여 지금은 어느새 영으로 달려가고 있는 모양새 일지도 모르겠다. 달려가는 속도도, 일에서 멀어진 거리며 영과 가까워진 격차며 하는 것들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이 불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의 구체적인 관계의 묘사가 마음속에 떠올랐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 잠정적인 판단임은 분명했다. 그래. 그다음 나의 상황 대처는 뭐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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