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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Sep 10. 2024

아이 신발이 자전거 보관소 지붕에 올라간 날

2024년 9월 9일 더움

우리의 사이도 각자에게 장기수선충당금을 걷어 오래된 건물을 체계적으로 보수 관리하는 것처럼 매일의 작은 실천으로 관리될 수 있을까? 나는 이번 주말까지만 해도 나 또한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관해 내가 부족한 점을 책에서 찾아 하루에 하나씩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매번 작지만 소중한 가족과의 일상경험에서 실패를 맛보는 이유는 내 성격과 인내심이 나빠서가 절대 아니라 단순히 무지함에서 오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의 에너지와 열정이 소강상태에 이르는 늦은 저녁시간이 되면 인간관계에 관한 고전책, 교과서라는 단어가 들어간 육아서 등을 읽어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찾던 해답을 여기서 드디어 발견한 듯이 기뻤다. 이 오래된 고전의 보물과도 같은 명언과 심리상담 전문가의 주옥같은 해설들이 곧 나를 육아 어려움과 관계 괴로움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확신 아닌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대감을 철저한 실천으로 옮겨 관계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만 한다면 모두가 그 어렵다는 것을 해냈으니 자신감을 일부 장착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김칫국도 벌써부터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다시 1패를 했다. 4시의 마법의 하원시간에 맞춰 아주 당당하고 씩씩하게 하원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마음과 다르게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대로변은 언제나처럼 수많은 차들로 대혼잡을 이루었다. 여기에 질 수 없지. 대로변의 혼잡함이 어제오늘일도 아니고. 예상한 어려움은 마음의 준비를 해주기 때문에 괜찮았다. 하지만 어린이집 현관에서 바로 줄행랑쳐 30 몇 도가 넘는 열기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놀이터를 종횡무진하며 아이가 쏘아 올린 운동화 한 짝이 자전거 보관소 지붕 위에 올라간 시점부터 패배의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우고 있었다. 친구 엄마와 함께 확인 결과 여느 우산 막대기로 내릴 수 없는 정가운데 위치였다.  


아이가 하원의 기쁨을 누리며 또래친구를 만나 흥분한 나머지 신발 쏘아 올리기 놀이를 하고 싶어서  운동화 한 짝이 올라간 것은 그리 잘못된 점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는 지금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고 방금 일어난 그 일은 내일 다시 잠자리채를 갖고 와서 신발을 끌어내리면 사건의 종결이라구...라고는 생각했지만 감정의 작은 파도는 어느덧 술렁이고 있었다. 아이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번만은 살살 아이를 달래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시종 드는 램프의 지니가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나는 냉정하게 아이의 책임질 부분을 물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한쪽 신발 없이 집으로 돌아가지만 신발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네가 고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네가 잘못한 부분을 엄마아빠가 대신 나서서 다 해결해 주기 전에 이제는 너의 책임의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아이를 압박했다. 아이는 해결방안으로 경찰한테 말해야 한다고 했다. 까딱 잘못하면 웃음으로 넘길 만도 했지만 웃음의 영역이 더 이상 아니었다. 그리고 집 냉장고에 떨어진 계란과 우유를 사야 하는 타이밍과 남편의 퇴근 알림 전화, 핸드폰을 방금 차 안에 두고도 영영 잃어버린 거 마냥 찾아 헤매는 기막힌 단기 기억상실증, 작년 유치원 친구 엄마의 근처 방문 소식, sns 알림음, 미로 같은 지하 주차장의 마법... 등등에 컵 안에 반만 남아있던 나의 인내심은 어느새 깔끔하게 증발하고 없었다. 나는 이미 유사 패닉상태였다.


한 손엔 계란 한 판, 다른 한 손에 무거운 장바구니, 아이는 한쪽은 하얀 운동화, 다른 발은 차에 굴러다니던 우천 시 대비한 장화를 임시방편으로 신고 있었기에 한눈에 보아도 절뚝절뚝 이상한 모양새의 하원길의 엄마와 아이였다. 하지만 이미 이상한 모양새를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다. 아이는 그 와중에 마트에서 젤리, 포켓몬빵, 아이스크림 중에 하나를 고르는 아주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결과물 봉지를 손에 쥐고 야금야금 인공 과일향과 말랑함을 탐닉하고 있었다. 양발의 어색한 모양새와 장화가 커서 절뚝거리는 걸음새는 아이에겐 그저 패션아이템에 불과할 뿐이었다.

 주차장 미로를 풀어 절뚝이 아이를 데리고 양손에 주부 전리품을 쥐고 집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나는 얼굴이 상당히 굳어 버렸다. 나 같은 소심이 예민이 말고 밝고 긍정이 같았으면 집에 돌아오는 과정이 잠시 덜컹은 했지만 안전하게 돌아와서 기쁘다고 좋아했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유쾌한 긍정이가 아쉽게도 되지 못했다.


아파트 정문 코앞으로 수없이 드나드는 유치원, 어린이집 셔틀, 수많은 학원 차량들을 굳이 다 마다하고 매일 한 시간씩 시간을 써가며 잘하지도 못하는 운전대를 잡아가며 아이를 떨어진 어린이집으로 출퇴근시키는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금의 이 사태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나만의 결론 도출과정을 되뇌었다. 정말 그랬어야 했나..?


집에 돌아와 아이가 먹고 싶다는 자장라면을 끓여 먹으며 저번에 어린이집 주차장에서 주차하면서 테슬라 자동차도 접촉된 것도 있고 하원은 당분간 지쳐서 할 수 없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어젯밤까지도 인간관계론과 육아 안내서를 읽으며 다짐했던 주옥같은 명언들과 실천의지는 이미 이 순간 증발된 지 오래다. 이미 지쳐버렸고 하루 버티고 하루 살아내는 하루살이 주부인 나는 그저 자장라면이 그 어느 때보다 맛있게 느껴질 뿐이었다.






매일 아침이 늘 그저그런 또 하루의 시작이었던 나에게  하루하루를 즐겁고 별  문제없이 잘 살아내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며 간접경험을 하는 것은 나에게 큰 선물이 되어주었다. 어느 날 빵을 사러 갔을 때  주인 아저씨의 세상을 다 가진듯한 친절함과 여유로움, 바삐 갈길을 가는 사람들 속에서 콧노래를 부르면 인생의 찰나를 충분히 만끽하는 누군가의 시간을 나는 보았다. 우울이 일상인 나에게는 크나큰 괴리감과 문화충격을  한 방에 주었다.

오늘도 아침 등원길 드라이브로 시작해  아이와의 하원길 그리고 저녁 시간까지 보내고 나니  나도 어쩌면 일상의 행복을 놓치지 않고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조금은 그렇게 변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당장 변화하지 않더라도 내일 아침 기상해서 크게 기뻐날 뛸 정도는 아니지만 새로운 또 하루가 생겨서 감사하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행복하다고 저 밑바닥 마음 한 구석에서 조금이라도 피어오르기만 한다면..나는 이제 1승이지 않을까? 아니면 그쪽 부류 사람들이 될 수 있는 한걸음의 방향의 전환을 이뤄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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