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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Sep 12. 2024

그날이 그날이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2024년 9월 11일 여전히 더움

어차피 같이 지낼 거 이왕이면 우울이와 좀 더 건설적이고 평화로운 동거를 하기로 결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의 변화는 찾아왔다. 그동안 다른 노력들을 해오면서 살아오긴 했지만 우울일기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어떻게 보면 작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아 조금 큰 변화를 목격했다.


매일 찾아오는 아침은 늘 마음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부정적이고 죄책감이 뒤얽힌 과거 인연과 생각에 관한 비디오테이프가 뇌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는 일들이 잦았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아침에는 늘 죄책감에 관한 여러 기억들이 자동으로 플레이가 되었다. 뇌가 어디서 찾아냈는지 귀신같이 찾아내 작동시키는 이 테이프들이 늘 아침 기분을 망쳐놓기 일쑤였고 원치도 않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회색으로 물든 아침 기분은 그날의 모든 일상생활에 간접적으로나마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아침엔 누구나 좀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해. 이건 누구나 바라는 평범한 일상이야. 이런 소소한 일상경험까지 네가 가져가 버리면.. 우울아 이건 좀 너무 심해!"라고 말하고 충분히 주장을 펴고 싶었지만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달랐다.  나는 더 이상 왜곡된 기억들에게 내 자리를 모두 내어주며 흐리멍덩하게 넋을 놓지도 않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해 내 간단하게 머그컵에 믹스커피를 마련했다. 아침에 어울리는 기운차고 확신 있는 태도로 아이를 대하고 있었고 잘 다녀오라고 남편에게 인사도 건넸다. 누가 보아도 오늘 아침의 내 모습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아침을 맞은 주부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지난 7년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침 시간에 보여준 긍정적 태도였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이제 우울과 슬픔을 정통으로 견뎌내는 것에서 조금 발전해 조금씩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울의 한중간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또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마음의 방정식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난 것 같다. 그런 슬픈 감정의 홍수를 다 막아낼 순 없지만 일단 위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활용해 보는 여유가 생겼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밤 시간에 아주 작은 자투리 시간도 의지만 있다면  할 일도 하면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발견한 아주 신기하며 간단한 방법은 아침에 식감이 다소 딱딱한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근과 부드럽지 않은 오래 씹을만한 소고기  그리고 통곡물 함유 식빵을 골랐다. 의지가 박약하고 우울이 조금 채색된 아침의 상태이어도 일단 아무 죄가 없는 멀쩡한 내 하루를 위해 씹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며 질긴 식사를 하다 보면 정신이 정말 맑아진다. 어쩌자고 아침마다 흐리멍덩하게 식탁에 앉냐고 스스로에게 잔소리 백번하는 것보다 꽤 효과가 좋다. 내 짧은 식견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아마 턱뼈와 뇌가 아주 가깝기 때문에 딱딱한 음식을 즐겨 씹으며  미각도 자극하고 턱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각성효과를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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