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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Sep 21. 2024

추석 맞은 우울이

2024년 9월 20일 금요일 비

추석에 관련한 나의 우울을 풀어낼 수 있을까? 어제까지는 진짜 병원을 찾아 상담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 집 근처 갈만한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말짱하여 병원방문은 미루게 되었다.


추석 연휴를 지낸 시점에서 우울이를 바라보았다. 우울이는 이제 갔을까? 우울이는 아예 어딜 가진 않았지만 다행히 먼발치서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는 있었다. 어디를 안 가고 여전히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은 아예 없는 것보다 차선이긴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게 기특하지 않은가... 늘 곁에 있어주는 것은 우울이를 친구삼은 대표적인 이유이다. 우울이는 여러모로 시기적인 친구들이 있었다. 비 오는 날, 추석, 설, 나의 생일, 가족 생일, 가족한테 전화 온 날 등등..


대표적인 우울이의 주활동 시기는 명절 전후였다. 명절이 되기 한 달 전부터 명절앓이를 시작했었는데 이제는 꽤 단축되어서 앞뒤로 이삼일 정도면 되니까 우울이가 많이 좋아졌다. 늘 해오던 대로 올해 추석도 우울이가 없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우울이가 어느 정도의 생활 범위에서 찾아올지 정도의 차이일 뿐인 것 같았다. 명절에는 정말 안 좋은 기억들이 수없이 많다. 가족들이  짧게나마 한 때는 오순도순 한 떼의 물고기들처럼 이중섭 화가의 제주도 그림들처럼 지내다가 어느새 거대한 빙산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매해 명절이 있었다. 긴 명절은 가족들이 화합하고 모이기도 좋은 시기이지만 반대로 저 밑에 쌓여있던 감정이 격해지고 폭발하고  서로를 향한 비난과 공격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되기에도 아주 좋은 무대였다. 어려서는 어른들 전쟁에 머뭇머뭇 한켠에 서 있기만 했는데 어느덧 한 명 두 명 중간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이 무대에서 퇴장하여 버리고 나는  우울이를 끌어안고서야 명절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우울이 곁에 있어줘서. 어쩌다 한 번씩 슬픈 일은 일어날 만도 하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명절마다 반복하여 겪고 넘어가야 하는 슬픔과 갈등이 있다면 우울이 와서 자리를 잡는 것이 뇌가 생각해도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적응과정이 아니었을까? 매년 찾아오는 추석과 설 명절이 우울이 채색해 놓은 회색빛에 가깝다면 나는 슬슬 그럭저럭 나쁜 일이 없었던 시간들과 함께 뒤섞어서 희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전히 섞어도 섞어도  회색빛을 하얗게 만들 수는 없지만 나는 다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토닥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명절마다 슬픈 일이 있었다니 그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니 고생이 많았어. 하지만 이제는 그런 우울도 일기를 쓰며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인 거 같아.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꽃길만 걷자라고 말하는 건 어쩌면 거짓말에 가까운 말인 것 같아. 삶을 평범하게 꾸려나가며 꽃길은 없지만 진흙탕 길도 물웅덩이도 적응하려면 나쁘지 않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게 인간의 능력이지. 나도 지금 그러한 인간의 능력에 조금은 가까이 간 것도 같아 참 다행이다. 잘했어!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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