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건강한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아

2024년 9월 29일 가을 운동회

by 육아와 생각

사람의 마음은 늘 주고받기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어제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사는 초등학생 주민도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초등학생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는 경우를 아주 가끔씩 보는데 보통은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늘 분주히 어딘가를 향하는 터라 이웃 사이의 대화의 장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어제는 아이 혼자 타는 터라 나는 괜히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이상하여 더운데 자전거 타고 왔냐고 말을 붙여보았다. 아이는 의외로 대답이 구체적이었는데 친구들과 단지에서 놀고 있었는데 다들 킥보드를 타고 있어서 자기는 자전거를 집에다 가져다 놓고 킥보드로 바꾸러 올라가는 참이라고 한다. 1층에 자전거 보관소도 있으니 집까지 오르락내리락 수고로운 때는 거기를 이용하는 게 어떻겠냐고 한 술 대화를 트고 있는데 아이는 8층 나는 11층을 눌렀다. 8층쯤에 올라왔는데 아이는 뜻밖에 나에게 부탁을 한다. 8층에서 잠시 자기가 집에 들르는 사이만 엘리베이터를 지연해 달라고 한다. 그렇지 않고 내가 11층까지 올라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자기가 다시 호출 버튼을 누르면 그만인 문제였지만 나는 아이가 부탁하는 대로 엘리베이터를 잠시 붙잡아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잘 가라 인사를 하고 일상 에피소드는 종료가 되었다. 이렇게 아이와의 작은 친절 주고받기가 성사된 것이다.


감사일기를 쓴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저절로 감사일기가 쓰여지지 않았다. 유튜브 등 자기계발 정신건강 분야에서 꽤 많이 들은 얘기가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기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는 추천의 말이었지만 지금 당장에 감사일기를 쓰는 것은 좀 어려웠다.


아이와 가족 모두가 잠든 밤이 되어서 나의 마음 읽기를 해본다. 나는 참 서운하고 서글픈 것 같다. 결혼 전 가족 사이에는 늘 질병의 고통과 그로 인해 보살핌의 부재, 가족 간에 일상으로 자리 잡은 단절이 있었다. 아주 작았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 곧 마음과 감정의 큰 성숙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어린아이였을 때의 가족과의 경험, 세상과의 경험을 나는 고대로 앉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뭐랄까 밍숭맹숭해졌다.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은 되고 싶지만 억지로 지어내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밝고 건강한 것은 보통 이상적인 지점이다. 사회도 밝고 건강한 사회가 좋고 학교도 밝고 건강한 분위기가 좋으며 사람도 밝고 건강한 게 좋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밝고 티 없이만 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울도 좋은 점이 있다고 한다. 불행을 전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만약 있다고 치면 그 사람은 실제로 친구가 한 명도 없을 거라 한 정신과 의사는 말했다. 자신이 불행을 겪어보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불행에 공감을 할 수 없기에 타인과 친구와의 관계가 어색해진다는 얘기였다. 아.. 그러면 나는 다행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슬픔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감사의 일기를 언젠가 한 줄 적을 기회가 있겠다.


얼마 전 오랜 친구로부터 현재 내가 감사일기를 쓰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감사일기를 쓰는 개인적인 일까지 훈수를 두는 것은 적당한 사람 간의 거리가 아닌 것 같다. 모든 사람의 삶의 무늬와 결이 다르다. 언뜻 보기에는 그래 보이는 것은 그래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게 실제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보는 것이 바로 성숙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가치관과 생각과 다르다고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관용이고 그 이면의 현실이 더 묵직하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 주는 것은 작은 헤아림과 아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살자는 어쩌면 내가 아닌 사회에서 정해준 이상적인 모습에 굳이 틀을 맞춰 살지 않기로 했다. 나쁜 말은 아니지만 나에겐 너무나 이상적인 말이다. 살다 보면 실망이도 있고 우울이도 있다. 실망이 우울이는 극복대상이고 건강하지 못해 함께 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만 한다면 너무 삭막한 것 같다. 나는 마음대로 해결될 수도 없는 실망이 우울이를 굳이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한 토닥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실망할 수도 있고 늘 우울할 일도 있게 마련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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