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의 개념에 유연해지기
2024년 10월 5일 수원화성 60 + 1회 개막식 공연 다음날
제60 플러스 1회 수원화성 문화제 개막식 상하동락이 시작한다는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에 사람들의 기대감 또한 고조되었다.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고 들어가는 무료공연이었는데 중앙 정면 관람석 바로 뒤 이동통로 뒷줄에 앉아 사람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우리 앞을 지나가는 대부분 사람들의 중론은 여긴 카메라에 가려서 안 보인다 패스하자였고 우리는 그대로 자리를 지켰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께서 공연의 내용을 물으신다. 나는 공연의 내용을 잘 살펴보고 온 게 아니라서 정조와 재현 그리고 노래와 춤 정도의 단어를 넣어서 말씀을 드렸긴 했는데 결국에 아직 시작하기까지 한 시간의 시간이 남아있다는 말로 맺음 했다. 할머니는 동무가 필요하셨는지 전화를 한 통 돌리시고 옆에 일본에서 오신 중년 아주머니 관광객에게 자리를 맡아달란 부탁을 남기고 집에 갔다 오신다고 가셨다. 할머니는 공연 시작 전까지 동무를 데리고 무사히 자리로 돌아오실까? 할머니는 끝내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 자리에 대해 앉을 수 있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그 일본 아주머니는 아주 고상한 한국어 발음을 구사하시며 크게 "하알머니가 집에 갔다 온다고 했어요."라고 전했다. 뒷줄에 20대 젊은 여학생 둘이가 일본 아줌마의 한국어 발음이 귀엽다고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절호의 타이밍에 입장한 청년이 그 자리를 운 좋게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 아주머니는 이제는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셨던 거다.
나는 여전히 똑같다. 여전히 죄책감이 깊숙이 녹아든 꿈들을 꾸면서 아침에 깨고 핸드폰을 어디다 두었는지 집안과 차 안을 찾아 헤매다 아침에 차 안에서 외박한 핸드폰을 발견하고 나 자신에게 푸념도 한다. 어제는 엄마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꿈을 꾸었고 지하주차장에서 방금 주차한 차를 어디다 두었는지 감쪽같이 사라져 찾아 헤매는 상황이었다. 몇 달 전 걷는 것도 푹푹 찌는 한여름 아이와 이발소에 방문했을 때 엄마와 황혼이라도 하고 싶다는 아빠의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인 것 같다. 엄마는 마음속에서 어느덧 스트레스 요주의 인물 1위에 등극한 것 같다. 엄마에게만 스트레스의 범위가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배려는 강 건너 어디쯤?! 의 말과 행동을 못 참아하는 전화들이 내게로 걸려오면서 전혀 나의 안테나 수신기를 그쪽으로 기울이지 않았는데 저절로 엄마가 이모들, 아빠, 할머니, 일가친척들에게 한 행동들이 속속들이 내게로 들려오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억울함을 풀어주는 인간 신문고가 아니었기에 나에게 미치는 스트레스 정도를 고려해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나는 애써 무덤덤해 지기로 했다. 엄마도 기왕 이번에 카테고리화하자면 스트레스를 내포하고 있는 전혀 제어할 수 없는 꿈들에 가깝다. 꿈을 꾸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깊이 심취하여 죄책이, 불안이, 속상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건 돌리기 게임을 하지만 거기에 계속 머물며 관전만 하다간 해결이 없다. 죄책, 불안, 속상이가 하는 수건 돌리기 게임을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멈춰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힘든 중에서 거기에 끝맺음하지 않고 좀 덜 힘든 것으로 옮겨가는 통로를 찾았다. 모든 일에는 동전의 앞, 뒤 또는 카드의 양면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현실해석이 있었다. 앞뒤 양면 있는 거 누가 모르나? 슬픈 일이면 슬픈 일 불행한 일이면 불행한 일이지 뭘 더 거기서 의미를 찾지?? 하지만 천천히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카드의 어두운 면 또는 한쪽 면을 봤을 때 한 번 뒤집기를 해보는 용기가 중간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어둡고 암울한 카드는 다시 뒤집을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너무나 개인적이고 개별적이고 복잡하다 못해 똘똘 뭉쳐 꼬여있는 문제는 어떤 누군가 솔로몬 왕이 와서도 대신 풀어줄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에 눈앞에서 시원시원하게 해결되는 과정이 보인다면 내 스트레스 또한 없어질 것 같지만 힘든 것들은 힘든 것들인 만큼 과정과 시간의 여유를 충분히 들여야 했다. 영화나 소설에서 작가가 써놓은 극적 갈등의 해결은 인생에서 없었지만 불행이나 불운을 대하는 조금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얻었다.
슬프면 슬퍼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고 불행하다 느껴지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냥 행복의 나날이 이어지는 것은 가능한 일 또한 아니다. 같은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뇌는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다. 대체적으로 좋은 일 나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면이 크다는 것이었다. 뇌는 그것이 7,80퍼센트 어둡게 보이면 전부 어두움과 부정성향으로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모든 사람일이 단순하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나쁜 점이 있지만 저렇게 생각하면 저런 좋은 점이 있기 마련이고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 내 삶의 긍정적 주인으로 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밝고 긍정적인 면을 일부러 찾아서 극대화하고 삶에 더 좋은 방향으로 적응할 줄 아는가?'이었다. 우울과 슬픔이 늘 곁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긍정적인 삶의 작은 면을 과장하여 크게 바라보는 유난떠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는 모든 세부사항을 면밀히 검토해 늘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느낌상 강하게 느껴지는 첫 번째 감정과 판단이 잠정적 결론의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충분히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0.1도씩 방향을 틀면서 뇌를 속이는 작업이 필요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행복한 삶, 객관적으로 불행한 삶이 흑돌과 흰돌처럼 나눠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각자의 뇌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자율적으로 거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본인이 긍정적 상황이라 판단하면 긍정인 것이고 부정적 상황이라 판단하면 부정으로 결론나는 것 뿐이었다.
종종 우리 집 어린이가 화가 날 때 나는 쥐새끼라 불린다. 쥐새끼라 불리는 일은 그리 반갑고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다. 엄마한테 아이가 버릇없이.. 하는 생각도 지나간 지 오래다. 아이의 예쁜 입에서 쥐새끼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TV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엄마가 가로막아 서서 속상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엄마를 쥐새끼라 부르면 엄마 마음이 속상해요." 이 말로 대부분 마무리를 짓는다. 그리고 쥐새끼라는 말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상대를 생각해서 참는 조절능력이 아이는 덜 발달되어 있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고 넘어간다. 나의 뇌는 아주 편안하게 생각한다. 쥐새끼라 말하는 걸 보니 아직 7살 어린이가 맞는구나. 그리고 조절되지 않은 말과 행동이 때때로 거칠고 듣기 좋지는 않지만 스스로 깨달아 소거될 때까지 엄마는 감정적으로 아무렇지 않을 준비가 다 되어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