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관한 일기

2024년 10월 24일 목요일 맑은 가을

by 육아와 생각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7세 반 졸업사진용 야외촬영을 나가는 날이라고 하셨고 9시까지 오라 했는데 그보다 일찍 8시 45분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교통체증을 피해 근처 도서관에 들렀다.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까지 출퇴근길 교통량이 굉장히 많은 구간이라서 오는 길에는 그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 들러보았다. 어색하게 아침 이용자 1등이 된 것 같아 도서를 정리하는 직원에게 도서관을 열은 게 맞냐고 물어보았다. 넓은 중앙 로비에 위치한 탁자 자리에는 평소 다른 시간에 왔을 때 가득했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친절한 직원의 응대를 발판 삼아 이 넓은 곳에 혼자 있는 어색함을 줄여나갔다. 리사손 교수님이 쓰신 임포스터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흔히들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겨왔던 겸손의 말들 즉 "운이 좋아서 합격하게 되었어요."라는 말 등이 남들을 속이고 열심히 노력한 나 자신까지도 속이는 대표적 겸손의 가면이라고 했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읽는 문장 문장들이 쉽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일단 임포스터가 아닌 걸로 치고 더 읽어 나가기로 했다.


어제는 9명의 이모들 가운데 한 명의 이모가 전화를 하셨다. 잘 없는 일이다. 미루어 짐작해 보면 9명 모두 전화하고 싶은데 한 명만 대표로 전화를 하신 거 같다. 또 엄마 얘기를 하신다. 엄마는 지난 추석부터 나에게 과자도 아닌 예감을 주었다. 당연히 떨어져 사시는 친정 가족들을 만나는 민족의 명절이라고 하는데 엄마는 바쁘다고 볼 수 없다고 아빠가 전했다. 동전의 양면이라는 그 유명한 모든 일의 긍정과 부정을 함께 바라보는 방법으로 극복하기로 했다. 우리 친정 가족이 언제 명절 따라 살았나? 명절 상관없이 살았지. 추석인데도 남양주 두물머리 송어 전문식당에는 가족과 함께 찾은 손님들이 그득했고 나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 사람들 중 한 명이니 뭐 특별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7살짜리 손자를 보며 어린애처럼 깨방정을 떨던 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할머니 집에 가 계셨고 역시나 몇 달씩 참다 참다 어찌하지 못한 불편함과 불통이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는 이모의 전화가 나에게 온 것이다. 나의 평범한 일상의 흐름을 갑자기 전환시켜 버리는 이런 전화는 5년여 전부터 걸려오고 있기 때문에 익숙해져 버렸다. 제일 먼저 할머니가 많이 속상해하셨다. 할머니는 안 하던 전화를 하셨는데 잘 못 알아먹는 옛날 말들까지 모두 섞어서 결국엔 엄마 때문에 속상해서 못살겠는데 너한테라도 얘기한다는 구구절절하지만 아주 간단한 메시지를 전했다. 나도 그 마음이 어떤 건지는 알지만 나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도 어릴 적부터 전혀 평범한 엄마가 아니셨다. 요즘말로 나르시시스트. 나르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에 대한 해법이 없어서 인터넷이라도 뒤져서 어떤 다루기 힘들고 다른 주변 사람에게 일상적인 행동으로 고통을 안겨주는 인간유형을 찾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나는 이미 경험상 엄마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제는 가정을 꾸려 같이 살고 있지 않아서 그 문제로 지지고 볶을 시기가 더 이상 아니었다.


이모가 엄마 좀 말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하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엄마는 내가 자기한테 도움도 안 주는 자식이라고 하신다. 크게 타격감은 없었다. 물리적 힘이 없는 엄마는 늘 말로 사람을 때렸고 나는 반평생 그 타격감의 정도를 체험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다. 어쩌면 엄마가 분을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걸어서 쏟아낸 전화기 너머 그 말은 옛날에 비하면 많이 걸러진 말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지만 나는 그 문제를 풀어 줄 수 없다.


임포스터이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실패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질 때는 '실패했으니 포기할래'가 아니라 '길을 가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는 거야. 결국엔 이 어려움도 다 지나갈 텐데 뭘' 하고 생각을 돌이키는 것이 좋다. 리사 손 <임포스터> 50p. 중에서


<임포스터>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왔다. 나의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말이다. 하지만 왠지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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