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th Cliburn Amateur (Oct. 12-18, 2022)
Preliminary Round. 무대 뒤 대기실의 그랜드피아노 warm-up 15분이 경과할 무렵 진행보조원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이제 내 차례임을 표정으로 알린다. 대기실을 나와 무대 진입로에 서니 나를 소개하는 진행자의 음성이 장내에 울린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온 ***이 여러분을 위해 Beethoven Sonata E Major op. 109를 연주하겠습니다. 저와 함께 그를 무대로 맞이합시다.” 관객들의 박수와 시선을 왼뺨으로 느끼며, 오늘 아침 10분간 미리 만져 본 함부르크산 스타인웨이 D-274를 향해 걸어 나간다.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는 가장 아마추어같지 않은 피아니스트에게 상을 주는 행사다. 그것은 마치 해머로 현을 때려 소리를 울리는 타악기인 피아노에서, 해머의 존재를 잊게 할수록 좋은 연주인 것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콩쿠르에 참가하는 것은, 아마추어의 특권 – 지난 수백년 간 전세계의 콘서바토리와 개인 스튜디오에서 제자의 제자의 제자들에게 전수되며 축적되어 온 ‘좋은 연주’의 기준이라든지, 호기심, 지루함, 연민, 대견함 따위의 감정에 사로잡혔을 청중에 아랑곳없이 내 ‘예술적 감수성’이란 것을 제멋대로 드러내며 한껏 자아도취에 빠지고도 욕은커녕 필시 칭찬을 받는 – 을 잠시 내려놓고, 어쩌면 Seymour Bernstein 선생처럼 "음악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우주의 원리와 같은 철칙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거스를 때 경멸받아 마땅하다고 믿고 있을지 모를 심사위원들의 처분에 목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박수소리가 잦아들 무렵 피아노의자에 앉아 높이를 조절한다. 의자가 낮을수록 시선이 건반에 가까워져 안정감이 생기는 반면 시야가 좁아져 커버리지가 넓고 도약이 많은 곡을 다루기 힘들다. 피아노의자의 높이를 감각에 의존해 조절하는 순간이면 늘, 라면을 끓일 물의 양을 계량컵 없이 어림짐작으로 맞출 때의 조바심이 든다. 나중에 물을 더 붓거나 액젓 따위를 첨가하는 식으로 낭패를 면할 방도가 있는 라면과 달리 연주 도중에 의자 높이를 다시 조절할 수는 없다.
그렇게 라면 끓일 준비를 끝내고는 피아노에 쏟아지는 조명의 색채와 조도, 검은건반들이 만들어내는 음영의 형태,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사물들을 재빨리 눈에 익힌다. 저 멀리 정면에 내 얼굴을 비추는 작은 거울이 있었던 듯도 하다. 1악장의 첫음인 G#과 E 건반에 오른손 검지와 왼손 소지를 각각 올려놓으며 주문처럼 속으로 되뇐다. ‘템포는 지금의 심박수보다 느리게, 양손이 미끄러지듯 대화를 시작한다. 저들은 이 위대한 음악을 난생 처음 듣는다. 연습량을 기억한다. 내 손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