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장 소중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최근 어머니 몸이 좋지 않아 여러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진료 소견이 나왔다.
여태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홀로 병원에 가셨던 어머니는 이번 검사엔 보호자 한 명이 꼭 데려와야 한다는 말에 조심스럽게 내게 이 상황을 털어놓으셨다.
“진작 말 하지. 왜 빨리 말을 안 해줬어”
혼자 얼마나 맘 조렸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답답해져 어머니에게 화를 내버렸다.
“안 그래도 너 일하느라 힘든데.
괜히 소중한 시간 뺏는 거 아닌지. 미안해.”
검사 당일 어머니는 검사실로 들어가고 난 대기실에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고 있다.
여기저기 맥없이 아픈 사람들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간다. 흰 벽, 흰 시트, 흰 환자복 온통 아무런 색채가 없는 곳.
난 이 공간이 조금은 어색해 앉은 자세를 고쳐보지만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환자만큼은 아니지만 보호자도 병원 안은 힘들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그렇게 어색하게 의자에 앉아 앞에 있는 검사 진행 현황판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잔병치레가 많던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대학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병원 가는 날이면 가는데도 오래 걸리고 진료 대기자 수도 엄청났었다. 난 그런 병원이 너무 지루해 떼도 짜증도 많이 부렸었다. 그랬던 내가 이젠 역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가 보호자 역할을 하다니. 지금 나처럼 엄마도 병원 안이 많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텐데. 환자복을 입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니 그녀가 많이 늙어져 있었다.
나는 예전 엄마 손잡고 다니던 어린 시선으로만 여태 그녀를 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나도 나이가 먹는 만큼 어머니도 늙는다는 건 왜 이렇게 체감이 안되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 갑자기 가슴속에 훅 들어와 일렁거렸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뺏을까 봐 미안해했던 그녀.
과연 내게 있어 '소중한 시간'은 무엇일까?
대답은 고민 없이 바로 나왔다.
나의 ‘소중한 시간’은 별 다른 특별한 게 아닌 지금 살아있는 그녀와 함께 숨 쉬는 이 순간.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실없는 농담이라도 건네며 웃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란 걸.
난 검사실에서 나온 어머니의 차가운 손을 말없이 꼭 잡아주었다.
“손이 따뜻해서 참 좋네”
평소 손잡기를 싫어하는 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
바로 이 순간이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당신의 소중한 순간은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