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

2장 13. 질문이 시간을 멈추다

by 엄도경




세상에는 나처럼 딱히 꿈을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겠지요?

꿈이 없는 사람도?

나는 조금씩 조금씩 내가 되어가는 것인 줄 알았어요.

뭐든지 느려서 학생이 되는 것도, 친구가 되는 것도, 자식이 되는 것조차 모두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거든요. 꿈을 꾸는 일도 말이죠.

아무리 엄마의 꿈이라지만 흉내 낼 수는 없었던 거예요.

내가 진정 무얼 원하는지 모르니까 덥석 물지 못했던 건데, 엄마는 기다려주지 않았지요. 오히려 내가 내 맘대로 사는 거로 생각했을 겁니다.

내 선택이 무시받는 느낌이란 어린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도 몰랐을 거예요. 나한테는 하늘이 무너진 대사건이었는데.

그때부터 세상 어디서도 배려를 받을 생각 따위 접어버렸으니까요. 오히려 모난 돌, 외돌토리로 낙인찍힐까……

그런 내가 너무 슬펐습니다. 눈물이 났지만 삶을 연기를 하는 무대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모르게 소매로 슬쩍 눈물을 훔치고 덮어버렸어요.

이런 나를 사람들은 강한 사람쯤으로 추억하고 있겠지요.


지난 세월 수없이 물어봤습니다.

'이대로 살아질 수 있겠니?'

나의 삶에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면 될지 모른 채 살다 바람처럼 사라져도 괜찮을지.

'나는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어? 내 삶에 내가 없어도 돼?'

두려웠어요.

한잠 자고 나면 어제의 발길이 모조리 사라진 사막(砂漠)처럼 내 시간이 원초적으로 부정당했는데, 다시 걷는다는 게 막막(漠漠)할 뿐이었지요.


‘사막이 아름다운 건 거기 숨어있는 우물 때문’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오늘도 야간비행 중일까. 단 한순간도 수색을 멈출 수 없어서 아예 돌아오지 않는 건지.

자식이 없었으니까 그런 결정이 어쩌면 쉬웠을지도 몰라.

내 삶도 이렇게 주체하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나는 엄마가 되었지……. 얼마나 무모하면 아이에게 등짐을 지워주고서……. 혼자서나 불행할 것이지.

나의 두 어린 왕자는 사막화된 땅에서 우물을 찾으려다 이 밤도 뒤척이면서 곤히 자고 있겠지요?

다 아니까, 너무 이해되니까 마음만 더 아팠습니다.



정말 나한테 성공하고 싶은데 세상 어디엔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 줄, 그런 게 뭘까? 있기는 할까?

이건 좋고 싫은 그런 얘기도 아니지만 행복에 대한 것도 아니었어요.

생명에 관한 얘기는 묻고 또 묻지 않는다면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이거든요. 내가 나를 껴안고 보듬으면서 끊임없이 나를 관찰해야 하는 물음이니까요.

보이지 않던 나의 본질을 만나자 행복했어요.

마침내 내가 되었으므로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행복해요.

하지만 또다시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때는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아서’가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이제 알게 되었거든요.

엄마가 뭐라고 또 나는 혼자 좋을 수는 없어서,

나만 알고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 자꾸 준순(浚巡) 하고 있네요.




‘아해’가 자석이 되었다는 건 외계인 영역에 해당하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어요.

기록은 있지만 보편적이지 않아 신비의 범주에 머물러 오해의 소지가 크지 않을까 염려가 되거든요.

몸과 하늘 사이에 왜 서로 당기고 있는지,

전류가 흐르는데 어떻게 몸이 상하지 않고 명의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인지, 왜 그렇게 될 수 있는지. 그런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든 게 다 궁금했어요.

신비 현상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자연적이란 관점만큼은 버릴 수가 없었지요.

다만 어떻게 답변할지를 몰라 자아비판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십 대에 삐꺽했던 발목이 수십 년 후 고관절의 문제로 드러나 정상화를 시키더니, 눈의 문제를 계속 개선하면서 몸의 내부 환경을 바꾸고 있고

그렇더라도 기적이란 단어는 붙이기가 싫었어요.

'기적은 모두에게 일어나야 기적이다'는 생각이 나부터 만족스러운 답변을 듣게 되기를 원했지요.

이 현상은 누구에게나 잠재된 내면의 능력이라고 보기 때문에

문제에 빠져들었습니다.


왜 아프냐는 것도 질문의 대상이었지만, 어떻게 저 스스로 나았지? 병원에 가지 않고 나을 수 있지?

답을 하려니까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더 깊게 다양하게 파고들어야 했어요. 자연 일반으로.

그리고 기다렸어요.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외양이 달라진 걸 인정할 때까지 또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친구가 나를 보고 “진짜네.”라고 느껴야 이해의 경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

친구가 흥미를 느끼기를 바랐어요. 그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걸 기대하면서.



'왜 빛에너지는 번개처럼 들어오지?'

첫 시작은 비슷한 현상부터 살펴보기였지요.

번개를 공부하다 아해와 맞닿은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눈을 감을 때 내 눈앞에 떠오르는 보라색, 자주색, 남색이 번개 다큐멘터리 동영상과 똑같다는 것,

둘째, 벼락을 맞은 땅은 모두 옥토로 변하는데 내 몸도 피부가 고와지고,

셋째, 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의 질소를 땅에 환원시켜서 비옥하게 하는데, 아해는 호흡에서 산화질소를 통해 혈관을 확장하고 혈류를 좋게 하며,

넷째, 태양풍이 방사능을 지구로 쏟아내면 지구 밖의 ‘우주선(宇宙線) 안전지대’가 모아두었다가 번개를 통해서 깨끗이 청소하듯이,

빛에너지가 인체에 쌓이는 독소를 제거하고

다섯째, 실제 사람이 벼락을 맞으면 심한 경우 심장이 정지되지만, 빛에너지는 아해를 돕고 있다는 것.

'번개'라는 주제 하나만으로 지구도 나도 우주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뭉클, 새삼스럽게 감동했어요.


왜? 를 물을수록 답하기가 어려워서

아는 건 도대체 뭔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았고 그래서 오늘에 다다르게 한 건 무지였는데, 올 때 빛에너지도 함께 데리고 왔지요.

질문이 시간을 멈춰 세워 하나씩 하나씩 답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해'를 통해서.

나도 아해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는 꿈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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