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2. 작별 인사
무릇 모든 아이의 삶은 엄마가 열어준 그 길에서 시작되는 것.
나는 뭐든지 느려서 받아들이는 데 시차가 있었는데 이해받기보다는 왜 그렇게 굼뜨냐고, 꿈이 없으니까 태평인 거라고 압박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매번 대드는 게 귀찮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숨기고 살았지만, 내면에는 풀지 못한 반항심이 그대로 남아 있었거든요.
누구를 위한 꿈인지, 무엇을 위해 꿈을 꾸어야 하는지, 같은 꿈을 꿔야 한 식구가 되는 건가,
전쟁을 치르듯이 사는 모습이 한심하고 허무하게 보였어요.
삶은 잔인한 걸까, 침 뱉었던 우물을 다시 마시게 된다는 말처럼 되돌아왔어요.
튕겨 나가는 감정을 그렇게 잘 알고 있던 내가 엄마가 되었는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를 이제 알았거든요.
엄마와 내가 꿈의 코드를 공유하지 못했던 이유가
각자 온 곳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것은 절망의 포인트도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데 나도 무시했어요.
천 년을 돌고 돌아 엄마 앞에 당도한 ‘온 존재’가 아이라고 인식했었다면 나의 분신이라는 소리도 쉽사리 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 새끼라 말하는 순간 마음에 가려져서
아이 마음을 읽지 못하게 될까 봐.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한 건 또 있었지요.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인데도 이상하게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다면
공통분모가 유일하게 같은 부모, 그것뿐이라는 얘기잖아요.
그렇다면 이십 년 밥상머리 교육이 가장 중요한 접점이었는데, 그마저도 또 간과했습니다.
아이의 가치를 엄마가 제멋대로 정하지도 않지만,
결과를 논하기 전에 과정의 올바름을 살펴주는 섬세함이 아이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읽어주는,
가족에게 자신이 귀한 존재인 느낌을 받는 것인데 ……
그렇게 대접받은 아이는 그만으로도 단단해져서 바깥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스스로 쓰다듬을 수 있고,
그 순간에 위아래 자매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가족의 맛을 익히고, 여유로움이 사람들의 감정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인간미로 발현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학력이 높은 내 엄마에게서도 배우지 못했듯이
한글만 겨우 뗀 다른 엄마에게서 단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언제까지 조상 탓만 할까요?
내 탓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는데 나는 자유로울까요?
그나마 '백 세 찬스'를 받은 우리 세대는 엄마들보다, 아니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배운 사람들인데 아무 관련이 없을까요? 과거의 방식과 작별하는 선구자가 되라고 시대가 등을 떠미는 것 같지는 않으세요?
모든 무지의 시작,
얕은 감정의 출렁거림, 끝도 없는 의심, 질투의 역사.
거짓말을 해서라도 지지 않으려 하고, 사람을 해치면서도 이기고 싶어 하는 세태.
인간의 굴레.
나는 진정 무죄일까요?
이대로 가면 어디에 닿을까요? 우리 아이들은요?
어느 누가,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마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겠지요.
영생을 꿈꾸다 수은 중독으로 죽은 진시황제,
향락에 빠져 로마를 불태우고 키득댔다는 네로,
광기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히틀러,
그에게 열광했던 군중,
나라를 먹여 살렸어도 반대편을 품지 못해 반목을 남긴 한 시대의 주인공,
다른 사람의 공을 헐뜯어야만 자신의 자리가 생기는 선동가…
그들의 출발은 모두 아이였어요.
세상의 모든 아이는 엄마에게서 왔으므로
엄마가 달라진다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까. 더 이상 망가지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꿉니다.
아이들이 웃는 꿈을.
엄마의 사랑, 모정만은 변함없이 위대하니까.
한 번 엄마는 영원히 엄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