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0. 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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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꼬마선충이 달팽이 집을 찾아간 사연은 이랬습니다.
사람들이 살포한 농약 때문에 신경이 망가져서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었거든요.
실망은 잠시,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겨우겨우 달팽이네 집으로 피신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요.
이름처럼 우아하게 기도하고 기도했어요.
“달팽이님. 달팽이님. 제발 하늘로 높이 올라 가주세요.”
웬일로 달팽이는 하늘을 쳐다보다 넋이 나갔습니다.
처음으로 푸른 공중을 힘차게 날아보고 싶어졌어요.
항상 집을 짊어지고 다녀 저 위를 올려다볼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못했었는데, 거긴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새장에서 튀어나온 종달새가
달팽이에게 등을 빌려주고
상쾌한 바람에 눈이 시원해진 예쁜 꼬마선충과 달팽이는
구름을 가르고 나타난 빛의 향연에 황홀경을 맛보았지요.
빛 줄을 만난 예쁜 꼬마선충
이제 달팽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달팽이는 슬펐어요
같이 가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집을 짊어지고 있어서 울고만 있었지요.
“빛살님, 빛살님. 세상에서 가장 예쁜 빛살님.”
예쁜 꼬마선충은 빛 줄에게 부탁했습니다.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할 줄 아는 게 누구인지 아세요? 바로 달팽이예요. 푸른 숲 달빛 아래 반짝이는 별처럼 온전히 하나 되는 사랑을 나누고 살아요.”
햇빛은 생각하듯이 잠시 뜸을 들이는데
종달새도 간절한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제 종달새는 홀로 돌아섰습니다.
어딘가 달팽이 집에 놀러 온 예쁜 꼬마선충과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푸드덕푸드덕
동녘으로 날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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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별에 열광했습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별에서 생겨난 존재였으니까요.
저 높은 곳에서 반짝거리고 싶었던 울 엄마.
유난히 질투가 심했어요.
그 시절에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도 더 높은 곳에 오를 생각만 했거든요. 내 나라를 잃었던 설움이 육이오 한국전쟁 통에 세상의 끝, 막바지를 보았나 봐요.
먹어도 먹어도 헛헛함을 가누지 못하는 소화불량 환자였지요.
비록 난리를 직접 겪은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운 사람답게 큰 그림을 그렸었다면 어땠을까요.
폐허가 된 현실을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지성인답게 시대정신으로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다면 엄마의 운명만 달라진 게 아니었을 겁니다.
각자 잘 살려던 욕망이 더해져 오르막길에서는 곱하기의 불꽃으로 극대화될 테니 당연히 으쌰 으쌰 해야 하는 걸 누가 부정하겠어요. 시절이 바야흐로 봄이었는데.
그렇게 정상에 다다르면 내려가야 하는 길.
그것은 엄마의 시대가 변곡점에 다다르고, 셈법이 달라졌다는 의미였는데 엄마는 신호를 무시했어요. 겨우내 마지막 잎새처럼 끝까지 가지에 매달려 있었지요.
가을 나뭇잎은 단풍 숲을 펼치려고 물을 끊고 광합성도 멈추고, 얼어가는 동토(凍土)에다 한 줄기 바람을 타고 골고루 명주솜이불을 덮어주었는데,
엄마는 자연의 이치를 스스로 거절하고 땅에 눌어붙어 군림했습니다.
직업이 본연의 자신인 줄로 착각하고
저 멀리 또 다른 세계의 비전을 보여주는 지성인의 지위를 자신을 위해 더 잘 먹고 더 잘 사는 데에 이용했습니다.
남의 생활을 도움으로써 자신을 보살피는 본래의 직업 정신을 제일 먼저 무시하고, 또 혜택의 우선순위를 조작해서
'공유지의 비극'을 유산으로 남기더니
말년에는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다 떠나갔습니다. 엄마 인생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어느 날 움직이지 못하던 예쁜 꼬마선충이 춤을 춘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반가웠어요.
약간의 조작으로 몸에다 광수용체를 심고 빛을 조사(照射)한 연구결과에는,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싶은 과학자의 꿈이 담겨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나도 갑자기 앉을 수 없어서 고통을 받았던 적이 있었거든요.
설 수는 있는데 의자에 앉으면 고관절 부분이 자지러지게 아파 꼼짝없이 누워 지내던 몇 날……
죽고 싶다는 사람은 있어도 아파지고 싶다는 사람은 없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는데 그때 내 안의 나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너, 죽는 거 무서워? 왜 걱정을 하고 있지. 죽기 싫어서 그래?”
나는 즉시 대답을 못 했어요.
잠시 생각하다가 “아니”라고 말했지요.
“넌 빛에너지를 받고 있잖아. 혹시 의심하고 있는 거 아냐?‘, ”아니, 의심 같은 거 안 해. " ’이대로 아프다가 죽는대도 안 해.”
그날 밤이었습니다.
잠을 자려는데 빛에너지가 평소와 달리
싸락눈이 하얗게 온 천지를 포근하게 덮듯이 에너지가 위로하는 느낌으로 흘러들었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오른 다리로 떨어지는 전기신호, 고통의 시작점에서 발바닥까지 내리 꽂히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그저 가만히, 가만히 놔두었습니다. 분명히 아프긴 하지만 비명을 지를 만큼은 아니어서 지켜보았어요.
에너지의 흐름에도 절정의 순간이 있었지요.
발바닥이 뒤틀리는데, 두 눈만이 놀란 채로 비틀어지는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빨래를 쥐어짜듯이 발바닥을 통제하는 전력의 힘을 직접 체험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아해’에 대한 경외심뿐이었어요.
인류의 선견지명이 별(astra)에서 온 존재가 별로 돌아가지 못하면 그게 재앙(disaster)이라고 단어 속에다 담아 놓았듯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자연'을 따르겠다는 각오를 내 목소리로 허공에 발화하면,
천명(闡明)으로 알아들은 아해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참 기막힌 동화죠.
생각이든 말이든 파동이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