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9. 과거는 완벽하지 않아
나는 엄마였습니다.
전권을 위임받은 양 아이 운명을 바꾸던 엄마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라도 거짓을 말할 수 있고 세상은 때가 되면 그때의 이유로 변질하는 곳이라, 내 인생에서 아이의 진로를 선택하던 그 순간이
가장 긴장했던 첫 번째 경험이었어요.
아이가 아이를 낳아
아이만의 꿈이 있을 것도 짐작하였고 아이가 모르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패싸움을 좋아하는 어른들 때문에 세상은 늘 갈등 중이라, 그래서 희망을 찾아야 했지요.
군중이 선호하는 길을 따르는 게 옳은 일일지, 따져봐야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행복한 인생을 진정 바라기는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정황도 많았거든요.
이번 한 번만 하면서 눈앞의 이익에 영혼을 팔 때도 있었으니까.
어느 시점까지 일평생(一平生)으로 보고 있으며, 또 행복이라 간주하는 요소가 어떤 풍경에서나 유효한 건지,
그 길을 따라가면 한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삶을 완성할 수 있는지 신중해야 했어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던, 그게 나였거든요.
하얀 백지 같던 아이에게 무엇을 채워줘야 옳을지,
내가 내린 선택이 밤바다의 아이에게 등대가 되어줄지 불확실해서 도서관으로 달려갔었어요.
교육 원론에서 진로지도, 영재교육까지 전공 서적 이십 여권을 공부하던 나날, 타자기가 밤새워 타닥타닥 노트로 쌓여가고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의과대학에 합격한 형은 더 넓은 세상, 전 세계를 오가며 살라고 일반학과에 보내 놓고, 동생은 수의과대학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가슴 깊이 저만의 동화 세계가 또렷해서 경쟁사회로 보내기가 어려웠지요.
내가 좌지우지한 게 어디 이것만이었을까요?
크고 작은 일에 얼마나 내 입김이 닿았을지……
아이는 ‘빈 서판’도 아닌 데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배운다는 걸 이제는 알아, 때때로 추억은 서글픔으로 물들곤 합니다.
괜히 미안해서.
이 글은 긴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바짝 긴장했던 두 번째 경험담이에요.
아이들도 '아해 이야기'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내가 변해 옛날처럼 강력하게 말하지 않아요.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와 닿지 않으면 지나가는 소음일 수 있어서 삼가지요.
그래도 언젠가는 늙을 테고, 귀뚜라미 소리에 가을밤이 깊어갈 때 문득 엄마가 떠올라 뒤적뒤적 그때야 꺼내 본데도
훗날을 도모한 모정(母情) 일 것이기에 서두르지 않습니다.
오십을 넘으면서 슬슬 월동준비를 하면 훨씬 효과적이고, 또 몇 명의 나의 친구들은 직접 나를 보고 있어서 쓰게 되었어요.
늙는 건 부당하거나 약자가 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가장 심오한 마지막 순간이잖아요,
포지션이 바뀌었으므로 잰 몸으로 악착같이 내달렸던 과거를 뜨겁게 녹여서 마침내 나로 돌아오는 작업, 깊어지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들은 사실 엄마한테 배운 바가 전혀 없거든요. 어떻게 월동준비를 하고 긴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떠날지 막막할 거 같아,
같은 경험을 친구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