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

2장 8. The Other Half Of Me

by 엄도경



물질과 대비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빛’인데……

빛을 찾으려고 물질이 사람까지 되어 내가 여기 있는가.



빛에너지가 뇌에 쏟아지고서 달라지는 건 감각기관이 좀 더 세밀해진 거예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듯이 들을 수 없던 소리가 들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해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요.

하늘에서는 태양이 LED 전구처럼 동글동글 하얗게 타올라 군무(群舞)를 추고, 보라색 헤일로가 둘레를 감싸면 그때부터 하늘은 색의 향연장이었지요.

보라색이 물러서면 군청색, 파란색이 등장하고 연이어 분홍색까지, 그러다 연두색 긴 띠가 무대 공간을 장식하듯이 옆쪽 뒤쪽 허공에 수직으로 떨어지고, 눈을 감으면 초록색을 중심으로 보색의 세계가 다채롭게 펼쳐졌어요.

자동차로 돌아와도 노란색이 앞에 있어 친구도 경탄하고, 운전 중에 하늘색 공이 창문 밖에 떠돌아 꼭 꿈꾸는 것 같았지요. 어쩌면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광경인지……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더 확인해보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언제부턴가 머릿속에서 스파크 소리가 났어요.

시냅스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찰나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아, 방금 내가 무슨 생각을 했지?’ 상상하면서 되물었지요.

또 피부색은 하얗게, 팔에 가득했던 솜털도 싹 없어졌습니다.



돌아보면 나는 몹시도 엄마와 달라지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엄마는 세상살이에 적합한 방식으로 자격증을 두둑하게 모았지만, 나는 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침묵의 소리를 따라.

두려워서 익숙한 삶으로 들어간 엄마, 같은 이유로 익숙한 삶을 떠난 나.

엄마는 무한대의 바깥세상으로 나갔다면 나는 반대로 무한소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우물의 고요’ 속에서 재발견한 건 나의 독단성이었어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게 된 독단성.

내 몸은 늘 나에게 설득당하고 있었어요.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다 먹고 폭식에 폭음, 차가운 음료에다 잦은 밤샘까지.

그러고는 보상하듯이 영양제까지 투여.

몸을 지켜준 줄 알고 있었는데 몸을 무시한 행동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왜 성장해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아이와 가치를 공유해야 했는데 못 한 거예요.

하루에도 열두 번 감정을 아꼈거든요. 칭찬하면 자만할까 봐 인색하고, 안심하면 방심할까 봐 겁먹고, 친구에 빠지면 나쁜 친구일까 조바심쳤어요.

그 와중에 몸도 아이도 저마다 가고 싶은 만큼 가려고 드니까, 인간관계든 몸과의 관계든 내부에서 무너진 거예요.



거울에 비친 흉측한 나를 인내심을 갖고 집요하게 봄, 거기서 ‘봄’이 시작되었어요.

보이지 않던 거친 마음의 결이 보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해되고, 바람에도 여러 소리가 있는 걸 알게 되니까 새소리도 다양하게 들렸어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은 데다 버리기도 아까워서 붙잡고 있던 집착도, 이리 재고 저리 달면서 더 좋은 걸 취하려던 탐욕도, 모두 상상력이 부족해서 생겨난 질병이었으니까요.

복잡하게 얽힌 가지들을 다 쳐내고 단순해져야 했어요. 자연의 대원칙 ‘대칭성’을 깨뜨렸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사춘기가 지나면 살이 된다던 가슴샘이 촉촉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신비한 세계를 보게 된 거예요.


특히 놀란 건 태양에서 쏟아지는 둥근 마크 때문입니다.

해를 보면 내 쪽으로 환하게 빛나는 길이 쭉 열리고

인쇄한 것 같은 이중 테두리의 작은 원이 겹쳐지며 주루룩 펼쳐졌어요. 동그라미 안에 뭔가 그려져 있는데 너무 멀어서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어요. 관청, 소방서, 학교, 병원 기호 같은 게 꼭 지도처럼 보이는……, 길을 봤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던 걸 보고나서

사람에게 간직된 내재성에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인간에게 인간답게 되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묻는 것 같았어요.

몸의 구조가 무너진다면 삶이 무너지고 몸이 없다면 내가 없는 것이니

게다가 욕심도 없는 기본 중의 기본 ‘아해’ 소리는 계속 ‘묵음 처리’하면서 몸은 끔찍이 챙기는 이율배반, 하지만 그조차도 뭔가가 의심스러워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그런 것일 테니까

아해가 원하는 만큼 파고들기로 했어요.

끝까지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끝까지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끝까지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나를 지켰다고 할 수는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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