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

1장 13. 반환점을 돌아 긴 겨울

by 엄도경



양양 남대천의 연어알은 엄마를 품고 있었어요.

푸른 바다의 냄새가 지느러미를 키워 치어는 무럭무럭

바다의 아이를 꿈꾸었지요.

꿈결에 엄마 꼬리가 간질여서 고개를 내밀고

엄마가 저기 있나?

바다는 어디 있어?

보이는 건 저 위 검푸른 바다, 맑은 허공.

보름달에 처음 뛰어오르다가

꼭 저 같은 친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바다의 아이는 친구와 길을 떠나기로 했어요.

강을 벗어나니 망망대해.

낯선 비린내 때문에 휘청대는데 때마침 높은 파고가 등을 후려쳐서 비늘마다 날이 섰어요.

그런데 돋아나는 자신감은 뭔지

미끌미끌한 바닷물이 속살에 닿으니까 지구 반대편 바다까지 건너갈 것 같았지요.

1km쯤 달렸을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연어가 떼로 몰려와 어안이 벙벙

"세상에 연어가 저렇게나 많아!"


같이 어울려 헤엄을 치니까 좋은 점이 많았어요.

신기한 걸 볼 때마다 재잘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 또 피곤할 때는 무리에 묻혀갈 수도 있었어요. 힘쓰지 않고 물살을 탔거든요.

태평양을 지나며 무서운 상어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1일 5부제로 대열을 바꾼 게 도움이 되어 꿈에도 그리던 엄마 냄새에 닿게 된 거예요.

베링해는 엄마의 품,

바다의 아이는 실컷 물장구치며 원 없이 누비다가

그렇게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반환점을 돌았으니 이제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달리라는 신호,

출발지점에서는 클라이맥스가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돌아오는 길은 차분하다 못해 고요했어요.

육지에 접어들자마자 장엄한 신고식을 치러야 해서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 같았지요.

뭐든지 막바지는 절정이어서 비장감이 흘렀습니다.

몸에 밴 소금기를 빼려고 민물에 샤워하는 그 순간부터 저항 모드거든요.

앞서가던 친구가 물살에 계속 고꾸라지면서도, 악착같이 자세를 고쳐가며 점프하는데……

바다의 아이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엄마가 무엇인지!


거칠게 막아서는 강물을 거슬러 끝까지 헤엄치면

등을 따라 길게 푸른빛이 가로등처럼 켜졌어요.

온몸으로 그 지점의 물줄기(時流)와 맞서는 극적 선택은 내가 나임을 보여주는 표식,

행복 호르몬을 모으는데 그보다 좋은 방법은 따로 없거든요.

탁탁 타다닥 물살에 살갗이 찢겨나가면서

기어코 원류(原流)에 닿으면 장단을 맞추듯 충만하게 차오르는 내분비샘.

알마다 저 위 바다 이야기를 꼭꼭 숨겨두고

산산이 부서지는 물보라가 달빛을 탈 때 어둠 속으로 떠났습니다.

죽기 위해 돌아오는 삶.

연어는 어떻게 자기 운명에 저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건지 숭고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우연히 20세기 말에 태어나

우연히 지식정보 사회에서 살게 되어

우연히 백 세 선물을 받았는데 열어보니 '긴 겨울'

이 우연들은 무슨 조합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해도 '긴 겨울'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 알고는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