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

3장 5. 과녁은 자연

by 엄도경


백 세 시대에는 출처가 매우 의심스러운 괴담이 나돌았어요.

"너무 가난하면 성인군자(聖人君子)도 돌아서서 노인이 믿을 건 돈밖에 없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거든요.

건물주가 천주보다 더 무서워서

'돈 많은 할아버지'가 꿈인 나라.


백 층 빌딩 앞 교차로 신호등은 한밤중에도 어서 빨리 건너오라고 깜박거리는데

세상길에 거절당하고 이리로도 저리로도 빠져나가지 못해 해파리처럼 떠 있는 ‘동동 섬’,

‘노인의 자식’ 청소년들이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병든 시대의 목격자면서 원인유발자였어요.

피해자면서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보이지 않는 손’을 너무나 늦게 알아챈 거예요. 내 손이기도 했을까? 그러나 결단코 나의 손일 수 없었던 그 손, 보지 못했거든요. 어리석어서.



10⁻⁹, 나노 공학 기술의 발전

10⁹, 십억 대 부자들의 보편화

지구인은 처음으로 먹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배고픈 아이들이 여전히 넘쳐나는 땅.

영의 자릿수가 늘어갈수록 높아지는, 저희끼리 짜고 치는 지도자들의 공놀이. 빌딩 숲에는 꼼수와 협상의 공조로 공포의 파장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10¹⁸, 백경(百京) 대 슈퍼리치 주변으로

10¹⁴, 백조(百兆) 급의 거부(巨富)가 도랑을 둘러주고

10¹², 조(兆) 단위 자산가(資産家)가 외곽을 견고하게 쳐주면

10¹¹, 천 억대의 재산가가 그 주위로 모여들어서

10¹⁰, 백억 대 부자들까지 겹겹 에워싼 출입 통제선

다층(多層) 구조


차가운 성벽(城壁)이 높아질수록 고약한 성벽(性癖)의 횡포가 늘어난 것도 어쩌면 시큼한 과시,

‘상 탄 사람과 벌 받는 인생 프레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게 의외로 먹혀서 불나방으로 수북한 아침 공양……

산은 높은데 골이 얕아도 너무 얕아서 남의 고통은 나 몰라라 무통각증(無痛覺症),

영의 빈곤 시대


‘결론적으로 무슨 짓을 벌인 거죠. 내가?’




손마다 들고 있는 스마트폰

외로울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SNS 시대

10⁻¹⁵의 펨토초 레이저도 발명되고 또 상상도 못 했던 미시세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정밀하게 살피고 있을까?

열두 폭 치마에도 담기지 않아 접히고 구겨진 마음, 한 겹 한 겹 들추기는 했을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져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졌을까? 수입이 늘어난 만큼 마음도 넉넉해졌을까?

자신에 대한 이해, 인간 이해가 깊어지고 따뜻해졌을까?

그랬을까?

원하는 건 그게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게 되어 이제 영혼이 자유로움을 느낄까?

오히려 의존적으로 변한 건 아닐까?


돈 앞에서 꼼짝 못 하다가, 돈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지리지도 없어서 운이 나쁜 내가 된 건 아닌지……

나의 힘은 어디서 나오고 있지……

나는 지금 잘하고 있나……



삶은 상상력에 관한 얘기일지도 몰라요.

자신을 자유롭게 열어놔야 하는 이유지요.

언젠가 자연이 나에게 돌아올 것이기에

안개가 자욱한 밤에 라이트가 다 나가, 뭍인지 물인지 구름 위인지 구분이 안 될 때 자동차를 버리고 어둠으로, 엄마가 감히 손대지 못했던 땅의 통제선을 맨몸으로 가뿐히 뛰어넘으면서

검푸른 새벽으로 올라가야 해요.

태생적으로 가족을 위한다는 무분별한 행동이 역사에는 하자를 남기고, 결과적으로 나를 망가뜨렸다는 걸 인정하면서 제일 먼저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으러 돌아다니던 것도 멈추고

답을 찾겠다고 가입 등록비를 내면서 기웃대던 회원증은 버리고

돈이 없으면 친구도 될 수 없고 엄마도 될 수 없다는 싸구려 비약은 날리면서

힘은 권한에서 나오니까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논리에서 벗어나

되어지는 대로 그대로 자유롭게 '자연'으로 첫 발자국을 내딛는 거예요.

나를 품은 질문으로.


내가 있는 것도

빛에너지가 있는 것도

직립의 아해가 나와 빛을 한 줄로 엮어서 하늘의 '출입통제선'으로 들어서는 일도 다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땅에서도 자유를 꿈꾸고 자유롭게 살겠습니다.

새처럼 훨훨 기체처럼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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