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6. 우연이 모여서
대여섯 살쯤 KBS 어린이 무용단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어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현장에서 종목을 합창단원으로 바꾸고 시원하게 미끄러졌거든요. 그때부터였는지 매일매일 불협화음, 삶은 나에게 자비롭지 않았습니다.
군대처럼 명령이 있었고 감히 엄마에게 항명했으므로 각오해야 했지요.
발칙하다고 야단맞다가 아예 ‘화풀이 센터’로 지정되었죠.
화산재를 뒤집어쓰고도 살아남아 휑하니 큰 눈망울에 심해처럼 짙은 외로움을 담고는, 육이오 전쟁이 또 일어날라 새파랗게 질리던 아이.
용감한 캐릭터도 아니었는데 어떤 선 같은 게 있었는지
누군가 그 선을 건드리고 넘을라치면 목에 칼이 들어온대도 맞서는 성향이 왜 내게 존재해서……,
돈줄이 막힌 건 기본이고 냉대와 차별 속에서 내 편이라곤 한 명도 없는 민폐 손님으로 살아야 했지요.
덕분에 가난과 바보 취급에 이골이 났는지도 몰라요.
삶 자체를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살아났다는 것에 대해서는 되려 너무 소중히 느껴졌거든요.
그런데도 어른들의 삶만큼은 합리적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 놀이터가 병원이라 퇴근 시간까지 진료실과 대합실, 입원실의 복도를 누비면서 어른들의 삶을 원 없이 실컷 구경했어요.
아픈 어른은 의사 앞에서 허술한 아이 같이 보였지요.
수술실은 달의 뒷면이었습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축축한 공기가 흐르고
애벌레처럼 생긴 스테인리스 용기에
집게손가락보다 가는 뼈마디마다 뭉글뭉글 휘 섞인 핏덩어리.
사랑이 사랑을 죽이는 모순이 구불구불 1층, 2층, 3층으로 차갑게 올라갈 때 너무 어렸던 나는
그것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어요.
영원히 실종된 생명을 향해 진혼곡이라도 불러주고 싶을 만큼 먹먹한 슬픔
비참한 폭력
매일 물벼락을 뒤집어쓴 화재 현장처럼 메케한 연기를 뿜어대는 스산한 풍경.
어른들 일상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 조각들을 수거하려고 삶의 최전선에 설치된 공간 속에서 나는
그렇게 살기는 싫다고 생각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정확히 표현할 길이 없는 허무감을 입안 가득 머금었는데, 아무리 엄마가 무섭다 해도 장차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즐거운 척 카메라 앞에서 춤출 수 있었겠어요.
새문안교회와 세종문화 회관 뒤편 어디쯤 통통통 날아다녔던 아이는 벌써
말하는 법, 어울리는 법을 잃어버리고
인형 놀이, 소꿉장난은 물론 친구와 재잘거리는 통과의례를 생략하면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나를 나에게 몰입시킬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다른 삶은 가능할까,
정말 길은 있을까.
땅에 속할지 하늘에 속할지 ‘자기 결정권’을 되찾을 때까지는 삶은 끝낼 수도 끝날 수도 없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자유에 대한 그리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인간의 자질로 집약되는 것 같았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삶의 사계절도 양상이 다 달라야 했어요.
마지막까지 엄마의 지구 생활에 동화될 수 없었던 건 자연법을 위배하면서까지 시절의 의미를 무시했기 때문이에요.
겨울이면 겨울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잎이 무성한 한여름처럼 돈으로 다닥다닥 한파를 막았다고 자만하다 동선(動線)이 흐지부지 끊기고 만 엄마, 나까지 치매의 길을 따라갈 수는 없잖아요.
마침 빛에너지를 만나고 올바른 방향에 있음을 확인받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해피엔딩이 가능한 삶은 저 스스로 다가오고 있는데
단독적 개인, 시민으로 살려니까 뭐 하나 만만한 게 없었지요.
가족이란 이름으로 밀고 들어오는 압박도 그렇고, 시대의 유행, 사조(思潮), 인기, 신념, 이데올로기가 자꾸 빛을 꺼버리면 싸워야 하잖아요. 족쇄를 풀어야 하니까.
게다가 골고루 적당하게 다 만족시키려는 습관 때문에 나는 매 순간 싸워야 했어요.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마음을 뺏기는 것도 문제구요.
그런데 결정적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공부는 좋은데 시험공부는 몹시 싫어했던 거예요. 자신의 속도로 자유롭게 탐구하는 게 행복해서
덕분에 날이 새는 것도 모르고 맘껏 집중했어요
.
클릭 한 번 할 때마다 위로 들어 올려지는 것 같거든요.
되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해야 할 일만은 꼭 해내고 싶습니다. 동심을 되살리는 일이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유치하게 옹졸하고, 아전인수에 떼쟁이 버릇을 타고났더라고요. 그래서 공부하는 거예요. 나를 속박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고.
공부할수록 순수한 아이 같은 동심(童心)이 따뜻한 동심(同心)과 어우러져 하늘도 방긋
웃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