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

3-7 『시간 지리학』

by 엄도경


“내가 그렇게 무거워? 아니면 무서운 거야?”

삶이 갑자기 물어왔습니다.

기습적인 데다 처음 받는 질문이라 무슨 말을 할까 멈칫거리는데 내 답 따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저 혼자 계속 읊조렸어요.

“뭐 거창한 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가볍게, 그저 같이 웃고 같이 울면서 알콩달콩, 한바탕 신나게 뛰어놀았으면 했거든. 그런 걸 바랐던 건데. 그냥…….”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게.”

지쳤던 걸까.

오랜 세월 엄마들과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허무감에 휩싸인 것 같았어요.

아니면 그들과 친해지지 못했던 게 못내 후회스러웠는지, 말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혹시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건 아닐까?”

“하나 같이 경로를 이탈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다들 한 번밖에 못 산다고, 잘살아 보자고 해놓고서…… 그, 그랬어…….”




노인이 된다는 건 ‘공간이동’,

그러니까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기후와 낯선 지리(地理)로의 이주였어요.

들숨이 얕아지는 것은 가만히 앉아있어도 또 목을 겨누는 칼을 뺏어 던져버려도 나아질 게 전혀 없어요.

아직 죽음을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삶을 포기하게 되는

고통의 최대치. 총알, 대포알이 목숨을 연장해주리라 굳세게 믿었는데 무심한 시간에 평생을 부정당하고 나면,

기울어진 운동장과 한 판 붙어 볼 엄두는 내지 못해요.


죽기도 전에 늙음 앞에서 벌써 패잔병이 된 심리의 엄마,

봄여름 줄기차게 내달렸던 건 한겨울에도 알곡을 추수하는 자리 하나 끝까지 지켜

함박 눈꽃 설경을 우아한 거실에서 즐기는 노년의 행복이, 노년의 지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천하무적을 꿈꾸면서 청춘을 불살랐었는데 모든 게 물거품이 되자, 사회에도 섞이지 못하고 약간의 남은 삶에다도 감정을 오롯이 이입하지 못했어요.

몸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노화의 후폭풍은 예상보다 훨씬 폭력적이거든요.



나의 노년은 빛에너지가 하루를 열고 마감합니다.

쇳가루에 자석을 갖다 대면 순식간에 일렬로 줄 서서 달라붙듯이, 광자(光子) 앞에서 모든 세포가 그렇게 행동해요.

도체(導體)가 된 뉴런이 찌릿찌릿 파장을 꿀꺽꿀꺽,

제3의 눈, 인당에 몰아치는 소용돌이(vortex),

프리웨이 척수신경을 타고 온몸에 공진(共振)을 일으키지요.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나는 비행선처럼 차크라 에너지를 받은 이래 나의 시간은 멈춘 듯 느려졌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박쥐가 날개를 펼친 듯 늘어진 목덜미 가죽이 저절로 당겨져 본래의 목 모양으로 돌아왔는데,

그렇다고 젊어졌다고 얘기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육십 대 중반의 나는 여전히 나이를 먹고 있으며 죽음을 향해 활기차게 가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엄마와 나의 결말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해요. 평생을 경계선에 서 있으므로 내가 우주와 더 가까워요.


빛을 탄 자연(自然)이 차근차근 ‘낡음’을 걷어내 독소가 빠지자 몸이란 공간이 지리적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떨어지는 빗방울 한 알도 버리지 않는 가문 겨울 숲의 말라가던 수로에 맑은 물이 찰랑찰랑, 대지가 비옥해졌어요.

40kg대 체중의 노인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팽팽한 ‘활력’.

젊음의 통제선을 한 번 넘어서면 늙고 병드는 거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알았었는데 상상도 못 했던 나를 다시 봄,

회오리바람에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열려 삶을 다시 고쳐 봄,

우주여행을 떠나 별 사이를 누비며 새로운 거주지에 다시 봄으로 태어날 것이기에 정녕 본 게임은 노인의 순간인 걸 깨달았어요.

재인식 과정에서 드러난,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 안에 다큐멘터리,

꼭꼭 숨어 마치 없는 것처럼 은폐된, 잠재된 ‘창조성’이 ‘늙음=낡음’의 도식을 간단히 깨부수고 말했어요.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바라보는 데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스스로 믿으니까 바로잡을 게 없는 거야.”



삶이 답을 들으려 했었는지는 아직도 좀 애매합니다.

하지만 그렇든 그렇지 않든 모순으로 가득 찬 생(生)에서 ‘가볍게, 밝게’를 선택하기까지 질적 전환을 유도했던 ‘시간의 두께’에 대해서는, 꼭 삶에 해명하고 싶었어요.

인생을 심각하게만 바라보다, 세상의 욕망에 자신을 맡기고는 안전한 일상을 꿈꾸며 생활을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물로 만들고 자식까지 끌어들였지만,

까닭에 절망이자 희망의 이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을 무모하게 저 홀로 벌이는 별종 캐릭터가 태어나서 삶이 원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되는 거라, 귀에다 대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더 느긋하게 심호흡하면서 여유롭게 봐달라고…….

그리고서 늙은 자신에게 말할래요.

“이제부터 시작이야.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장식이 모두 다 사라졌어도 무너지면 안 돼. 이게 내가 싸워야 할 현실이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이 현실도 지금의 나를 또 극복하게 해 줄 거야.”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는 분장을 지우고 언제나처럼 어두운 복도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지. 오해와 비난을 받는 날은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역을 살리려고 발버둥 치잖아. 그러니 초인적인 힘으로 ‘활력’을 되찾아야 하는 거야.

바닥에 떨어졌을 때 진짜 나의 가치가 드러나거든.”


오늘 무대가 마지막인 걸 아는 노배우는 분장사를 거절했습니다.

무대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에 맞게 민낯이 비칠 정도로 가볍게 화장해야 해서요. 달콤한 꿈을 꾸며 단잠 자는 아이같이 밝고 고운 표정이 진짜여야 하니까.

작게는 한 세대의 주검이지만

크게는 연금술을 벌이면서 우주여행을 떠나는 생명의 큰 그림 한 장을 완성하는 게 삶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아닌지,

명확한 답이 없기에 숨이 멎는 순간까지 묻도 또 물어야 해요.


그래도 꿈꾼 대로 ‘화학 공식’ 하나 얻었으니 산뜻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언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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