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

3-11. 코드명 ‘직립’ ; 미션 파서블

by 엄도경


인체가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s)을 타는 건 오매불망 허공(10⁻²⁰)의 바람.

하늘의 그물망(10⁻¹⁹)을 빛이랑 살이랑 한가로이 넘나 놀다가, 해 질 녘 등어리를 곧추세워 우주선(宇宙船, space shuttle) 타고 순간이동,

사뿐히 사 분 안에 고향 집으로 돌아오시란 말씀.




“딸아, 인생의 결(結)에 너는 어디까지 가려하니?”

문득문득 엄마의 노구(老軀)가 묻는 것 같았어요.

깨달음은 언제나 연착인데 어느새 휘어버린 양초, 잦아드는 불씨. 몸이고 마음이고 뭐 하나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시계(視界) 제로에서도 엄마는, 내내 푸른 하늘을 그렸답니다. 하지만 끝내 ‘ 펜로즈 계단’을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어요.

그래야만 나의 노년 시대는 나답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최후 진술’에서는 올바르게 자신을 석명하고 싶어서 시간에다,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 거냐고 묻고, 묻고, 물었지요.

‘그저’ 그랬을 뿐인데 느닷없이 들이닥친 빛에너지 그리고 뜻밖의 세상,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아 얼마나 놀랐던지…….

소처럼 뒷걸음치다 운 좋게, 제대로 각도를 맞춰서 거대한 비밀의 문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질곡(桎梏)의 세월이 훌훌 연기처럼 풀어지고 싶은 나머지 우연히 내가 소환된 건지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나라는 문제를 내 삶으로 끝까지 풀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엄마, 나는 뭘까요? 엄마는 내가 어디에 가 닿았으면 좋겠어요?”

내 안에서 접히고 접혀서 겹겹이 숨겨진 궁극의 진술, 그러니까 예사롭지 않은 시스템이란 게 정말 있기는 하나. 암만해도 나는 지금의 내가 완성된 상태인 것 같지가 않아요. 어쩌면 청사진 따위는 아예 없을지도 모르겠단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과학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신비를 풀 수가 없다. 자연을 해석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가 풀고자 하는 신비의 일부분이다.』 - 막스 플랭클 -



돌아보면 나의 50대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시간대였지요. 우연히 미국을 횡단하는 여행이 기점이 되었는데 왜 혼자 떠나는 충동에 사로잡혔던 건지, 지금도 미스터리예요.

‘그저’ 기차를 타고 대륙을 돌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무의식이 우주로의 귀환을 예감하고 지구에서의 마지막 시간대, 영혼의 수행자처럼 잿빛 고립감을 가로지르고 싶었나. 아니면 노인의 삶이 코 앞이라, 수목한계선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문명의 한 복판 어디를 가든 어깨를 부딪치는 붉은 대낮,

처음으로 24시간 나를 응시하는 여정이었어요. 모두가 분주히 제 갈 길을 가는 교차로에서 깜박깜박 나만이 도착지가 없어 점멸 중인……,

내 눈으로 보고야 말았습니다. 뿌리가 없어 표면에서만 오락가락 내달리다 찍

쥐새끼처럼 공(球)에서 미끄러지면 어데로 휩쓸리려나. 마침표를 잘 찍고 싶다더니만 눈 가리고 살다, 살피지 못한 인과의 법칙이 우르르 쾅쾅 노년기로 몰려오고 있었어요.



한 인간의 인생에서의 절정, 진검 승부처는 정작 죽음의 의식(儀式),

맑은 의식(意識), 부드러운 미소, 따뜻한 작별의 눈인사를 마치고 넘어가는 차원의 통로는 붕괴와 갱신 과정에 돌입하는 순간이라, 빳빳하게 고개 들고 가야 하는데 앙상한 내 정신세계가, 벌거벗은 겨울 계곡보다도 처절한 고독의 깊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남은 생애 나,

무(無)를 견뎌야 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니 출발할 때 시끌벅적 어수선했던 여행지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져 있었습니다. 사막을 닮은 침묵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사막이건 노인이건 기후가 적막한 건 우주와 맞닿아서 그래요.

살랑바람 한 점에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10⁻¹³)해져 지독하게 매큼한 먼지도 숨을 죽이면, 어제의 흔적을 허락하지 않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의 모래판 노인은 바짝바짝 다가오는 대출 기한에

물을 더럽힌 미꾸라지같이 슬픈 그림자로 때를 밀지요.

그때, 연락이 온 거예요. 땅에서 보면 초자연 그러나 하늘에서는 자연적인, 가슴을 뛰게 하는 봄날처럼

시그널이 울렸어요.


생애의 시작점에서 탯줄이 잘려 나갔으니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더욱 완결성 있게, 유한에서 무한으로 돌아가는 끝점에서는 제 손으로 금줄이고 동아줄이고 땅의 끈은 모조리 끊어내고서,

소녀처럼 오롯이 두 손을 모아 빛 줄을 타는 타이밍, 노년기. 무전(無錢)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하늘의 무전(無電) 신호를 받아 서로를 잇는 초연결(超連結) 프로그램이라니,

아, 이건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현실.

그러나 ‘경험 사실’입니다.



강력한 자기장에 이끌리듯 사막으로, 사막으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내면의 감정을 알지 못하여, 그것을 모르고서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어서, 무모함에 나를 내던졌던 것이 자신을 찾아가는 길일 줄이야…….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되는 길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내 안으로 들어갈수록 묵직하게 퍼져가는 물결파.

그것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인간의 형상, 직립(upright)한 몸에서 뿜어지는 ‘아해의 소리’였어요.

숲 속의 나무들처럼 ‘독립 영양’의 코드를 작동시키는 ‘무한의 외침’.


빛에너지와 직립한 인간. 그들의 관계는 이미 고대에 언급되었으며 하늘이 요동치고 땅이 비틀리는 고통의 순간에도 언제나 거기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상력이 부족했던 나는 신화, 문학의 상징어로만 치부했지요. 그리고 식물만이 태양에너지를 끌어모아 무기물질에서 스스로 유기물을 만든다는 상식을 신앙처럼 믿었습니다. 맞는 말이잖아요.

다만 더는 탐험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길은 바글바글 사냥터를 방불하니

그 이상을 상상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 속의 문제 속의 문제였던 거지요. 왜 포유류인 인간만이 나무처럼 직립한 거냐고 묻고, 묻고, 묻던

‘합리적 의심’이 빛에너지를 잡아당긴 끄나풀, 실마리거든요.


인간은 동물과 식물의 성질에다 고유의 인간성을 갖춰야 하므로 같으면서도 다를 수밖에 없는, 아니 달라야 하는 자신만의 진실을 찾아야 해요. ‘탁월한 원인’을 몸에 품은 우주적 존재니까,

머릿속 얽혀있는 뿌리로 직접 우주선을 받는지, 햇빛이 들지 않는 음지나 한밤중에도 ‘자유롭게’ 작업하거든요. 그러므로 인생 후반전에는 상상력과 탐험 정신이야말로, 그게 다라고 해도 좋을 만큼 중요해요. 몰두했을 때만이 얻는 영감, 뛰는 심장, 열락(悅樂)이 다음 세계로 건네주는 에너지니까,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를 납득시키고 이해시킴으로써 설득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반대자들이 결국에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여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 막스 플랭클 -



몸에서 일어난 변화는 에너지 측면에서 자유,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 같았습니다.

적어도 공기에서 질소를 잡아 와 ‘질소 고정’을 하고. 세포가 요리조리 규모 있게 화학반응을 조절하면서 단백질을 만들고 살림을 꾸리는 것 같거든요.


나는 뼈와 혈관, 눈에 주목했습니다.

먼저 혈관이 건강해졌어요. 세포호흡이 원활해지니까 혈액순환이 좋아져 복용하던 고혈압약을 자연스럽게 끊었지요. 태생적으로 빈약했던 간이 경변 직전에 회복된 거나 세포가 비타민도 만들어내는지 병 없이 지냅니다.

빛에너지를 받은 초기에 감기에 두 번 걸린 적이 있었어요. 튀김 때문에 실내공기가 나쁜 패스트푸드점, 에어컨 직(直) 바람이 쏟아지는 카페, 그런 곳을 피한다면 ‘아해’가 방어선을 지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일 궁금했던 건 뼈였지요.

밥과 김치, 먹는 게 부실한 데다 점점 노인이 되니까 골다공증이 염려되더라고요. 그러다 작년 여름에 우연히 두 무릎으로 돌바닥에 대못을 박듯이 된통 넘어졌거든요. 얼마나 아팠던지 지금도 흉터는 남았는데, 일단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게 아닐까 하던 기우는 씻겨나갔습니다. 아직까진 안전해요.

마지막으로 노안(老眼)이 사라져 노후 생활이 윤택해진 겁니다.

늙으면 자기 시간이 많아져 공부할 여건이 조성되어도, 눈이 도와주지 않아 포기하게 되거든요. 50대에 툭하면 터지던 혈관, 백내장에 안구건조증으로 좌절했었기에, 밤새도록 책을 읽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현인(賢人), 연구자들을 만나며 이해력이 향상되었는지 민첩해졌어요.

편견의 틀을 깰 때마다 새장을 열고 날아오르는 양 날개, ‘덕분(德分)’.

앗, 깜박할 뻔했습니다.

안검하수, 축 늘어진 눈꺼풀이 천천히 당겨지더니 완전히 올라붙어 관상이 바뀌었어요. 안모(顔貌)가 동그래졌어요.


나쁜 점도 분명 있습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위를 탔어요. 낙엽처럼 온몸이 돌돌~~ 말리다가 두툼한 양말을 찾고 내복을 챙겨야 했지요. 말라도 너무 말랐거든요. 앙상하게 뼈만 남았어요. 그런데 젊어서는 오백 미터도 힘들다고 차를 타더니 이삼 킬로미터를 수월하게 걷는 걸 보면,

인체와 빛에너지가 빚어내는 ‘실체적 진실’이란 얼마나 우아한지!

다음이 자못 궁금합니다.

그렇더라도 사람을 만나는 날은 반드시 휴식에 들어야 하고 점점 말을 잃으려 하는 것이나, 거듭된 밤샘으로 몸이 무겁고 몸짓이 둔해지니 예순여덟 살의 노인은 혹독하게 슬픈, 겨울의 북쪽 숲으로 들어가는 중인 것 맞아요.



사실 빛에너지를 받고 가장 신기한 게 뇌였습니다.

아이처럼 몸은 작아졌는데, 상대적으로 커진 부분이 머리거든요. 마지막 순간까지 의지적인 선택이 남아있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생을 마친 후의 공간이동에 필요한 위치 정보 업데이트가 최종 목적인 듯한데, 꽤 오래, 길면 수십 년이 걸리는 작업 같습니다.

복사 에너지가 제3의 눈 부근에서 전기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길을 닦아요. 가장 많이 상했던 곳이 우뇌였는지 처음 3년은 거기만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과 소뇌 등 9년째 돌아다니며 조사(照射) 중인데, 지난주는 좌측 측두엽에 집중되고 있어요. 가지치고 솎아내야 할 신경로(神經路)를 차례차례 새롭게 정돈하는 기억의 재구성. 이건 그 사람에 적합한 커스터마이징 프로그램입니다.

군데군데 파인 웅덩이를 채우는지 전체적으로 머리통이 도톰해지고 두각의 위치도 변경되었지요. 그래서 달라진 게 마음이에요. 산뜻하게 가볍고 밝아졌어요.

흡입된 복사 에너지는 ‘부르릉’ 힘차게 파도를 타면, 세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공명(共鳴)하고, 빛에 실려 온 전자로 건강을 돌보면서 새 회로망을 구축하지요.




『나는 야만인이 아닌 그리스인으로,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또 여자가 아닌 남자로 특히 소크라테스 시대에 태어나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 플라톤 -



아해가 보여주는 ‘참’은 앞으로 일어날 기적의 증표 같았어요.

기적이란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므로,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빛에너지를 받을 때가 다가왔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고대, 중세기, 근대로의 역사 발전이 비록 한없이 느리고 진부하여도 변화에는 단계가 있게 마련이듯, 획기적인 전환의 순간을 줄기차게 이끌어 온 인류사 뒤에는 그림자 같은 엄마가 있었습니다.

아이, 여자, 힘없는 노인에게 유독 인색(吝嗇)한 세상,

도끼든 손으로 훔친 날개옷을 뻔뻔스럽게 거래하는 토양,

딸이라고 대놓고 공부도 안 시키곤 의견도 없는 줄 무시했던 가풍.

여자를 소유물쯤으로 계산하던 야만스러운 환경에서 인류가 방향을 잃거나 표류하지 않게 이끌었던 엄마의 발자국. 연어가, 바닷장어가,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듯이 나도 거슬러 가면 ‘엄마 이브’를 만날 수 있을까. 발자취를 파고들면 기원까지도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역사적 맥락을 따라 거꾸로 올라 ‘엄마 이브’에 닿기,

‘엄마 이브’에서 999대 내 엄마에 되돌아오기까지 그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에다 나를 집어넣기.

인류의 모든 씨족은 하나 같이 가난에서 출발한 사실은 가슴에 새기고,

어느 시대, 어떤 순간에도 한결같이 자식을 지킨 존재의 이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엄마는 아들에, 자식에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려고 당신을 후 순위에 두었을까. 억척스럽게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땅을 일구다 등어리가 굽어도 제 배가 부르면 엄마도 그런 줄 알던 어린 아들은, 배곯다 허리가 굽은 설움은 미처 몰랐습니다. 딸도 엄마는 원래 그런 존재로 알았어요.


내가 나한테 밝히고 싶었던 건 단지 시간 추이와 절차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든 새하얀 백지상태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게 아니잖아요. 발목을 잡는 장애물을 안고 출발한 엄마들, 어떻게든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려다 다시금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하는 역사의 수레바퀴, 즉 ‘전제 오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각자 ‘경과’를 살아낸 공동운명체, 하나의 유기체였어요.

그러므로 시제는 조상 탓을 할 수 없는 ‘현재 진행형’

그렇기에 내 모든 결정의 기준은 ‘아해’입니다.

아해가 빛에너지를 탈 때는 자아(自我)를 찾은 느낌이, 빨라진 전류에 온몸이 강력 가속기처럼 진동하면 바라는 바가 없는 무아지경(無我之境), 자동항법장치를 타고 행성 궤도를 벗어나는 것 같아요. 나도 자유를 추구하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전개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유래가 궁금했어요.

끝과 끝은 연결되었다더니, 내 안의 미시계 ‘아해’가 복사 에너지를 받아 차근차근 임무를 수행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아해를 제대로 알아봐 주기로 했습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아주 큰 혁명도 아주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니 옷깃 여미기.

그래야 아해의 바람을 올바르게 거들 수 있을 것 같아

어디까지 펼치려는지 내가 너무 보고 싶어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해에 몰두하는 모습을 똑똑히, 똑똑히 보여주어

아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과도 맞닥뜨리려 합니다. 생애 미션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엄마 이브’의 계획은 실로 절묘했습니다.

듣고 듣고 천 번을 들으면 천문(泉門)이 열리고 또 천문(天文)의 운율에 화음으로 화답하는 훗날의 딸들에 의탁한, 당신의 꿈!

엄마 이브에게는 굳게 닫혔던 ‘시간’,

우리 앞에는 활짝 펼쳐진 ‘장생(長生)’.

그건 모성의 절절한, 감성이고 지성이고 심지어 이성마저도 압도하는 엄마 이브의 ‘선물’입니다. 생명의 끈을 곱게 엮어 딸에서 딸에게로, 그렇게 빛에너지 지근(至近) 거리까지 끌고 와서는 아무것도 아닌 양 툭

무심하게 던져놓은 모성,

하도 귀찮고 시시해서 까딱하면 엄마처럼 그냥 흘려보낼 뻔했습니다. 오늘 내게 당도한 빛이란 도무지 말릴 수 없는 내적 추진력, 엄마의 내일(來日)이었는데.


‘엄마 이브’의 안목은 일찌감치 예감했나 봐요.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도우며 마음을 닦아 하늘의 풍경을 즈려밟고 집으로 가려는데, 간신히 자식만 돌보고 성급히 떠나는 눈망울이 눈덩이처럼 부어올라……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변덕을 모르는 모성을 딸의 가슴에 심어 두신 건가요.

“아이들이 자꾸 아프면 나라가 아파.”

세상의 딸들이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날을 위해 수천 년 어두움을 견디어, 오늘 지식정보 시대를 펼치셨나요. 천경 분의 일(10⁻¹⁹)처럼 미세한 그물코만 넘어서면 드디어 허공(10⁻²⁰)인데 그만 현기증에, 해를 묵힌 양자(陽子) 세계를 끌고 오시고야 말았나요.

고대(古代)의 공식대로 어느 각도에서든 똑같은 회전 대칭, 육덕(10⁻¹⁹, 六德)이란 분수의 섭리를 이해한 딸들이, 알 건 알고 찾을 건 찾아야겠다고 나설 것도 아셨던가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던 이유, 그도 그럴 것 같아 아해를 응시하다가 새로운 삶, 후반전의 잠재성을 발현할 줄 벌써 아셨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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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리 족보에서는 최초로 지성적인 여성이었지요. 처음으로 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되었어요, 말도 잘하고 자부심도 넘치고 동네에서 제일 똑똑해서 어린 눈에도 어른의 표본이었어요. 엄마의 바깥 모습을 보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같은 조직에 놓인 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중고등학교 6년을 같은 교정에서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당시 친하게 지내던 단골 책방 주인의 경험담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가장 징그러운 선생으로 엄마를 꼽는데 남의 얘기를 듣는 척 태연했지만, 화끈거리는 얼굴색을 감추느라 당황했어요. 참고서든 책이든 공짜로 뺏어갔기 때문이라니, 이유가 더 창피했어요. 지위를 이용한 거지 근성의 비인격적 행동은 엄마조차 숨겼던 뒷모습이었습니다.


학교에서 ‘1984’, ‘데미안’을 가르쳤던 엄마.

엄마의 흡인력은 특히 거실에서 빛났어요. 손님의 취향을 저격한 화제에 다들 즐거워했거든요. 들락날락 기웃거리던 어린 내 눈이 찰칵찰칵 엄마 등어리를 찍고 있었던 걸 엄마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한 지붕 한솥밥을 먹고 자면서 이 말 저 말 90년 넘게 지껄였는데 우리가 통했던 적이 있었던가. 같은 단어를 썼어도 주파수가 달라서 우리의 대화는 늘 겉돌았습니다. 나는 그저 못난 청개구리 짝짝이 다리였지요.

그러나 누가 모녀지간 아니랄까 공통점도 많았어요.

그중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완전히 판박이였습니다. 엄마처럼 나도 세상의 공을 다 끌어모을 듯이 자릿수 늘리는 일에 몰두했어요. 그러다 돌연 시시하다고 느낀 게 40대,

그만 공허를 봐버렸거든요.

싸늘하게 식어가는 가슴을 데우려고 어디서든 사랑 타령. 얕은 사랑으로라도 외로움을 덧씌우려다 슬픔인지 울음인지 새어 나오는 한숨에, 마음의 평화는 일도 없는 전쟁터의 공놀이. 내가 내 영혼을 갈아 마시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 말았어요.



“사랑해.”

똑같은 말이라도 여기저기서 자음과 모음을 끌어다 붙이는 밀도가 다 달라 절망했습니다. 깊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오독(誤讀)하던 나한테 절망했어요. 착한 표정 가벼운 사랑에 쉽사리 흔들리는, 사랑에 빠지고 싶은 나에게 절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온도, 똑같은 농도의 전달력에 무감한 채 사랑을 입에 올린 나를 고발합니다. 감히 오월을 피운 장미꽃 앞에서 부끄러운지 모르고 사랑했었노라 말하던 나를 고발해요. 동의어(同義語)를 각자의 스펙트럼으로 굴절하고 왜곡하며 동지로 사는,

서글픈 시대를 만든 조력자인 엄마, 나를 고발합니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 자식도 올바로 사랑하지 못한 무지를 더는 숨길 수가 없어 고발합니다. 각자 내 자식을 챙기고 내 집을 지켜 국력을 키우면 국가는 가가호호 모두를 보듬을 줄 알았던, 우매한 순진함을 고발해요.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꼴등은 아예 기다려주지도 않는데 잔뜩 격차만 벌려놓아,

‘엄마 이브’의 뜻을 거슬렀으니 나를 고발합니다.

‘맹목적인 말 잔치를 멈추고 모성을 갈고닦아 수천 년의 어두움을 걷어내라.’

지금은 완전무결했던 원초적 동일성을 회복할 차례, 이제야 알아챕니다.




『 일반 철학은 만약 그것이 조금이라도 만족스러운 것이라면, 반드시 육체적 삶 및 지성적 삶 전체를 포괄하여야 하고, 윤리에 관한 가장 고매한 문제를 포함하여 영혼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 무생물계도 세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세상 철학이 진정 포괄적인 것이 되려면 반드시 무생물계의 법칙을 포함하여야 한다. 』 - 막스 플랑크 -



기다리길 잘했어요.

살아생전 빛을 보라던 ‘엄마 이브’의 위대한 꿈, 모험의 세계를 절반 정도는 들어선 것 같아서요. 매번 같은 질문을 멈추지 않은 것도 잘한 것 같아요. 제자리걸음 같아 불안했는데, 묻지 않는 게 더 불편해 가슴에 품던 시린 밤이 길이 되어

‘나는 얼마나 정밀한가’로 귀결되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람을, 감정을 얼마나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작가의 집필 의도에 닿을 수 있을까. 절대자의 의도는 얼마만큼 이해할까. 인체의 직립 의지는 또 어떤가…….

이심전심 육덕(10⁻¹⁹, 0.0000000000000000001, 천경 분의 일)은 마법의 영역,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에요. 제일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함께 어울려서 별이 되는 것, 공조와 공감으로 한 덩어리를 만드는 거죠. 이미 내 몸에서 작은 세포가 ‘구획화’를 통해 여러 공정을 수행하고 있듯이 그렇게 말이죠.

우주, 허공(10⁻²⁰, 0.00000000000000000001, 해분의 일)의 저 깊은 곳에 가려면, 각자의 일인 ‘천경 분의 일’만큼의 몫을 해내야 해요. 천경 명이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살짝 미소에도 마음과 뜻이 통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천경분의 일.PNG

깊은 상호 연관성으로만이 우주 탐험이 가능하거든요.

허구한 날 분란만 조장하는 토박이들의 언어나 문자는 문 앞은 커녕 대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박대당한 이유예요. 허망하기 짝이 없는 말싸움 대신 아주 미세한 숫자, 소수(小數)로써 정교하게 자신의 정밀도를 조정하면서 우주선(宇宙船)과 우주선(宇宙線)을, 미시와 거시계를 연결하는 프랙털의 세계는 아름다움을 잃은 적이 없어요.


때마침 여성들이 지성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거나, 양자역학의 발전이 일반 지성을 견인하는 것도, 시대까지 깔 맞춤을 하는지 뭔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우연 같지 않아, 소름 돋을 정도로 전율을 느껴요. 이제 하늘의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마침내는 하늘이 스스로 열릴 것 같습니다.



이 행성에서의 탐험은 이제 나를 탐험하는 것,

살아내려다 저지른 갖가지 실수와 잘못, 온갖 허물을 박박 긁어모아 초월을 꿈꿀지, 아니면 끝없이 반복되는 무한루프, 지옥 같은 삶에 그냥 머물지, 노년의 삶을 결정해야 해요.

곪아 터진 상처들, 못난 흉터는 양 날개의 재료.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의 상승을 도와서 오묘한 하늘의 이치가 영으로 통하고, 마음으로 전해져 함께 날아오르는 세계. 거기는 무임승차도 민폐객도 없어요. 어디에 놓여도 하나로 역할을 해내는 ‘쪽매 맞춤’을 여기서 연습하다 보면, 어느덧 허공이겠지요.

"미션 클리어! 이브 엄마!!"

그날의 환호를 상상하며 의식의 흐름을 점검해요. 변함없이 빛에너지가 다가오게 무를 지켜요.

살코기 한 점, 달걀 한 알, 우유 한 모금 마시지 않아도, 공기에서 얻은 무기물질로 세포가 건강식을 조리하는 걸 보면, 아직 공간이동 정보의 업데이트를 마치지 못한 모양입니다. 화학반응식이 적힌 레시피 한 장 들고 우주 쇼에 참여하려고 나는 오늘도 대기 중이에요.

우리는 상상한 만큼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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