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빚과 빛
길은 언제나 두 갈래였어요
과거를 사는 ‘빚 길’
미래로 발걸음을 옮기는 ‘빛 길’
늙은 적막.
중심 시간대에서 벗어나니 달리 보이는 게 있었지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결정이란 게 결국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둘 중의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는데
안전지대에 있고 싶었던 나는 성장을 쫓아 최선을 다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궁지는 면피했을지 몰라도 사지로 떨어지는 난(亂)은 피하지 못한 거예요.
잘못된 시간 사용법으로 노후의 우울도 돕지 못하고
삶 이후의 새로운 삶도 준비하지 않은 거니까.
죽음이 종착역인 걸 모를 리 없으면서 잠시 외면을 선택했던 게 프레임에 갇혀
‘저 멀리’를 상상하지 못하게 된 거죠.
세월에 눈은 침침하고 촉박하게 귀까지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허락된 ‘삼십 년’.
받고 보니 귀한 선물이라 아무리 반가워도
시간의 의미가 너무 무겁고 무서웠어요.
미래가 불안해서 열심히 살았던 건데 여전히 불안은 남아있고, 말 그대로 데스매치라 혼돈의 시간이었지요.
엄마가 그랬듯이 땅에다 다시 못 박고 살 것이나
아니면 나무들처럼 바라는 바가 없어서 세파에 무릎 꿇지 않는 ‘해 바라기’로 살 것이나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또 선택해야 하는데 데스밸리 사막에서 표지판을 잃었던 장면보다 더 불안했습니다. 이미 한 번 살아봤는데도
아니, 봤으니까 더 그랬습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 걸까?’
‘이번 삶에서 나는 뭘 배운 거지?’
절벽 끝 스러진 자리
온 길을 내려다보니까 하늘에서 주먹만 한 폭설이 퍼부어 아랫녘 풍경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요.
오직 차가운 바람만이 길을 기억하고는 이 동네 저 동네를 실컷 돌아다니다 마음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세상 바람 내 바람 구분 못 하던 어리석은 욕심
끊으려야 끊을 수 없었으니 이 지경까지 온 거겠지요.
돌아가고도 싶었으나 눈이 녹는다고 해도 애당초 없었던 길 어디든 낭떠러지
그걸 깨달았어요.
꽃같이 좋았던 날
나도 좋은 집, 좋은 차,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여유롭게 사는 자리매김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빚쟁이에게서 벗어나는 걸음이 ‘빛 길’의 거름일 줄 알고 엄마를 따른 거예요.
닿고 보니 그러나 눈앞 희미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혈관처럼 성근 길이 끊어질 듯 간신히 이어지고 있었지요.
새길을 찾기에는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고
그렇다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려 세상 어디도 믿을 곳 머물 곳 없는 노인의 심정.
쭈글쭈글 낡은 ‘몸은 왜 이렇게나 크냐.’ 아찔했어요.
내 살 집 하나 짓자고
나무를 베 버리고 숲도 산도 우르르
싹~ 다 밀어냈는데 그 땅에 의지하고 살던 풀벌레, 새, 작은 동물은 어디로 떠났을까.
대출이자율을 따지려고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사라진
소박한 나의 꿈들과 함께 다 같이 아침이슬을 따라갔을까?
큰일을 하려면 불가피한 희생쯤 어쩔 수 없다는 파괴적인 생각
큰 돈벌이를 원하던 지상에서의 성공, 엄마의 엄마 방식은
부잣집 도련님도 가난한 할아방의 손주들도 야멸찬 빚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삶의 굴레였습니다.
내가 나를 되살릴 수 없다면 그건 나를 책임지지 못한 것.
소년 정신으로 해를 따라 남의 걸 뺏지도 않지만,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는 미래로 새롭게 길을 닦아야 하는 데 잘 안 되었어요.
생각하는 방식을 뜯어고치려면 오랜 족보의 습관을 이겨야 했습니다.
성장은 아예 봄여름에 맡기기.
그리고 완성을 향해 욕심을 덜어내고 성숙해지기. 일단 흉내 내기부터 했어요.
외양간은 다 잃었어도 소는 살았으니
그러므로 과녁을 맑게,
나는 나의 한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세상으로서는 변방, 나로서는 중심.
반전이 장착된 판타지의 주인공이 되는 길로 들어가요.
푸른 첫새벽을 깨우는 새들의 분주한 노랫소리
나른한 거미줄에 발목을 잡혀 꾸벅꾸벅 졸다가 그네에서 떨어져 부끄러운 하얀 구름
달빛에 세수하고 곱게 분단장하는 달맞이꽃
가을 빗길에도 활활 불타오르는 단풍나무
정든 숲 떠나려다 골짜기에 멈춰 서서 성가를 부르는 저 겨울바람
고요한 무지개 호수의 청정
보라색 헤일로 광채를 두르고 반짝이는 햇빛을 따라 봄날처럼
사람의 본래 운명, 축복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