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1장 6

오류

by 엄도경



‘내 인생의 오작동, 그 시발점은 어디였을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는 질문이 끊어지지 않았어요.

그랬었던 아이가 인생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근원적인 질문을……

그것도 자신으로부터 받고 있다니

아이에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내게는 나를 알아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인생 드라마의 엔딩 씬이 준비 없이 펼쳐지기 전에

파도 소리

빗소리,

법주사의 정이품 소나무가 무거운 눈덩이를 털어내다 그만, 가지가 뚝 부러지는 소리

발화하자마자 허공으로 스며드는 내 목소리.

덧없음의 소리 속에서

궁극의 비밀을 찾아야 했던 거예요.




‘나는 인간일까? 사람일까?’

탐색은 여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본래 단독적이고 고유한 개인 '나'가 있는데도 나는

사회적인 나와 구별하지 않은 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혼용(混用)하고 있었어요.

통념상 한 범주에 넣는대도 뭐, 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문제 될 건 없었지요.

그런 줄로만 알았던 건데

거기에 ‘욕구’를 대입하니까 얘기가 달라지더군요.

인간사회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외적 욕구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완성하는 내적 욕구.

나라는 한 점에서 출발하는 두 욕구는 서로 등을 지고 반대 방향으로 부는 혼돈의 바람 같았습니다.


솔직히 나는 외적 욕구부터 추구했거든요.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밖의 삶부터 채워가다 보면 다른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테고

그러면 내적 욕구까지도 차례차례 정돈될 거라고 계산했었으니까. {참 영리하다고 내심 칭찬했는데……)

그러나 바깥세상의 목표는 이상하게도 허무감과 무상을 달고 다녔어요.




‘앎’을 얻으려고 에너지를 ‘사르는’

그래서 '사람'이라 불리는 존재.

깨달음과 연결된 내적 욕구가 결핍되어서 배움으로 해소하지 않으면, 그리고 진심이 아니면 버텨내기 어려운 정신적인 존재였어요.

그러므로 '관찰'을 통해 결여를 마주하는 ‘자기 응시’가 필요했던 거예요.

분명히 이 언저리 어디쯤에서

나 자신을 잃은 끔찍한 버그가 일어났을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에 자신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특히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알아야 할 게 있지요.

해피엔딩 내 인생을 위해서 인간과 사람 중에 굳이 한쪽을 고르라면

사람에 충실하여 자신을 완성하는 길, 그것만은 어떡하든지 스스로 확보해야 돼요.

적당히 인간사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는 포부가 도리어 대단한 욕심이라서 톡톡한 대가를,

결과적으로 자신을 치르게 되니까요.



내 인생에 있어 내가 나다운 기점이 되지 못했던 건

인간과 사람의 개념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은 ‘범주 오류’

인간과 사람만큼의 거리로 외적 욕구와 내적 욕구를 취급하다가 그만, 삶의 균형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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