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1장 7

대화

by 엄도경



‘나를 나이도록 하는 건 무얼까?‘

나도 청춘시대에는 빛나는 신록처럼 better me, better life, better world를 꿈꾸었어요.


’그래서 너는 원했던 그 모습이 되었니?‘

’그 시절은 너의 지금에 만족할까?‘




너-나, 인간-나, 세상-나.

이 속에서 나는 참 많이 흔들렸어요.

상대와 관계 맺는 방식에 기준이란 게 있기나 했던 걸까?

다가오는 파장 따라 춤추던 나의 반사각(反射角)

층층 스펙트럼

어울릴수록 욕심내고 허둥댔어요.

차가운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가슴 기슭이 하얗게 쓸려나가고 서글픈 환상통(幻想痛)이 매캐하게 몰려왔어요.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어느 하나 놓을 수 없이 모두가 중요해

잠 못 이루던 밤들.


’도대체 진짜 넌 어느 거야?‘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나, 내가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데 있어 실패했다는 사실을.

두 눈을 부릅뜨고 유불리(有不利)만 따지는 내 모습이 실은 내가 봐도 하도 창피해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강한 거'라는 세간의 외침에

격하게 공감하는 척 내 안의 나에게

순진한 눈빛을 짓고 바깥에서

해답을 찾으려던 건지도 모릅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낯선 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면 빠뜨리지 않고 지도를 챙겨놓고

정작 나 하나와 떠난 ’ 인생 탐험 대장정‘에는 어떻게

시커먼 뒤통수를 뒤쫓았을까요?

무슨 배짱으로 평생 무사고 베테랑을 따라가는 것처럼

행여 꼬리를 놓칠까 곁의 사람들과 눈길 한 번 나누지 못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을까요?

어쩌면 겨우 한 달짜리, 우주 나이로 완전 초보일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 모양이었으니 안개 낀 밤길 십 중 추돌 대형 사고로 목숨을 잃는대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삶을 살았던 겁니다.

내 인생인데 남의 인생을 훔쳐보듯

전봇대 뒤에 숨어서 먼발치로 나를 산 것이나 다를 게 없었어요.




삶은 내가 나를 데리고 길 떠나는 '생명 탐험의 대서사'인데

그저 평범한 나는 기껏

과거로 난 길 나-나, 내 안의 나로 들어갔습니다.


바깥세상은 전쟁터

이익과 손해의 갈림길에서 가진 걸 지키려면 악마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니

살아갈수록 원하는 게 많아지고 몸은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어요.

낡은 파이프에서 피식 새어 나오는 독가스가 내장된 설계도를 뭉개고 있어서 더는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심장 고동 소리가 총성처럼 터질 때마다

머리가 열을 받아 두 손이 부들부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어요.

언제 내가 내 몸이었던 적이 있기는 했었을까.

내 눈길이 닿지 않는 모퉁이에서 몸이 울고 있었던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거든요.



몸 – 새 – 나무 – 구름 – 꽃 – 벌 - 해 – 허공은 지구 주파수와 같은 파동으로 공명(共鳴)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 마음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너무 얄팍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니까 섬처럼 고립되고

원래부터 그랬던 게 아니어서 자꾸만 몸이 아팠던 거예요.

자연이면서 자연에 속하지 못하는 쓰린 고통으로 그립고 외로운 몸이 화나서 울 때면 산도 울고 나비, 우주까지도 다 같이 울부짖고 있었는데

몰랐던 건 나 혼자뿐이었어요.


사는 건 현실이라 안주하려던 것이 침식과 융기를 되풀이하면서 내 마음이 음 이탈을 냈거든요.

자동차 바퀴와 핸들을 일렬로 정렬하듯이

바다 해(海)가 하늘 해와 대칭을 이루는 것처럼 나도

마음을 몸의 진동수에다 맞춰야 했던 거였어요.

날뛰는 숨을 심호흡으로 깊숙이 다독거리고 점점 식고 있는 몸을 따뜻하게 응시하면서

땅 - 나 - 하늘을 한 줄로 연결해야 했어요.

나도 자연이란 사실을 먼저 인정하면서 말이죠.



자연은 원리를 담고 있고

내게 있어 자연은 몸 하나뿐이므로

내 삶의 기준점도 몸이어야 해서 나의 힘으로 ’ 내적 지도‘를 찾아내는 게

나답게 살아가는 인생일 테니까요.

삶에서 누릴 게 있다면 오직

깊이 있는 평화, 기쁨, 자신에 대한 확신

그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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