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어느 지점부터인지 사는 게 시들했어요.
실력도 모자라고 체력적으로 부족했을 때도 자긍심도 있었고 감동이 넘쳤었는데,
완전히 방전된 건지
너무 익숙해진 건지
숫자 지표로 결정되는 일상의 반복이 전쟁터 같아 재미가 없었어요.
“뭐가 이래!’
‘이렇게 사는 게 삶인 거야?’,’ 정말 이게 다야?‘
기를 쓰고 살았는데 나까지 그랬어야만 했던 건지 회의감이 들고, 다른 길이 없었으므로 의욕이 떨어졌어요.
열심히 살던 낙오자는
'사방팔방 취미 방 동호회 뺑뺑이'로 줄행랑을 쳤어요.
으쌰 으쌰 자극받아 다시금 불씨를 지피고 싶었거든요.
인간(人間)으로서의 나
누군가의 행복을 흉내 내려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감정을 세밀하게 읽고 있어야 했어요.
열 명의 사람을 만나면 열 개의 거울 앞에 놓이고 적어도 열 개의 단편으로 해석되는 '상황 속의 나.'
유리면에 따라 길고, 뚱뚱하고……
빛의 입사각에 따라 하얗고, 꺼멓고, 붉고……
개인 취향에 따라 좋고, 싫고, 그저 그렇고……
……
조각들을 모으면 나이기는 할까?
각각의 함유량은 몇 퍼센트지?
나도 내 성분을 100% 다 알지 못하는데 되비쳐진 반사각을 속수무책 다 나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건지
재해석이 필요했습니다.
거울 열 개를 이어 붙이니까 기괴한 괴물,
평가도 들쭉날쭉, 평균치가 일정하지 않던데
그들도 그걸 본 걸까? 그래서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했나?
내가 지레 그렇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았다면?
무방비상태로 평가받는 것도 두렵지만
이방인이 되는 건 더 두려워서 설치한 적정선이 '좋은 사람 되기'라면 양손에 떡을 쥔 채 울지 말고
남을 위해 좋은 사람이 되려는 건지, 남들이 보는 나를 위해 좋은 사람이 되려는 건지, 진정 자신을 위하는 게 뭔지 세세히 살펴봐야죠.
행복은 단순히 정서적 균형의 문제니까.
사람은 사랑
사람이 사랑이라 사람으로 불린다면
얼마나 사랑해야 나는 사랑이 될까
얼마나 공허해야 나도 사랑이 될까
당신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나에게 있던 그토록 다채로운 나를 끄집어내지 못했을 거예요.
보고 싶어서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내가 창조되지 않았을 것처럼
한순간에 삶이 무너져 내려 분노로 잡아먹을 듯이 발 구르는 심정이 어떤 건지 짐작하지 못했겠지요.
카네이션을 보고 오월을 그리워할 줄 아는 나를 만날 수 있어서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은 우주의 사랑을 상상하게 되었듯이
조막만 한 고사리손이 그렇게 의지가 되는 큰 힘일 줄 어떻게 알겠어요.
사랑으로 들뜨던 나
그럴수록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도 커져
같은 공간 엇갈리는 외로움에 사무치다
사랑이 가면
공허가 다가오고
허공을 보다
허공이
다가오고 오고…….
새 사랑으로 옛사랑을 덮어씌워도
역시 공허해 허공을 보다가…….
당신을 향한 사랑은 추억도 될 수 없어 어떡해도 결국은 인간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무서운 건지 알려준 것도 당신이었지요.
세상의 냉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당신이 겪는 경멸의 고통이 너무 생생해서,
같은 불벼락을 맞지 않으려고 꽁무니 빼던 방관, 나의 비겁.
지지 않으려니까 쉬운 게 하나도 없었어요. 나도 몰랐던 새로운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거든요.
"그때 걔한테 나도 실망했어."
‘삼인칭 화법’으로 인정하는 척 마냥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상황은 반복되는 거라서.
나한테 이런 면이 있나 놀라다
얼마나 차가워야 모욕이 되는지 '동정심 없어서 나도 못 살겠다'
공감을 배우는
공허.
사랑 Ⅰ, Ⅱ, Ⅲ…… 이 왔다 갈 때 삐죽 뾰족 모서리
각졌던 사람이 깎였습니다. 파도 한소끔, 바람 한 점에 미음이 이응으로 곱게 다듬어졌어요.
모진 맘보를 공허에 던지면 둥글둥글 공 굴리는 허공
천상 에너지는 동심원이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더는
공허하지 않은 사랑 허공.
아해야 너도 보이니‽
공허와 허공 사이
드리워진 연결
투명한
'빛 줄'
아! 나도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