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1장 9

이별

by 엄도경



'아, 이 길 끝에는 뭐가 있을까?'




가까웠던 사람과 헤어지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면 차갑다고 말하지만,

이별이 너무 힘들어서 꾹꾹 억누르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참고 또 참아보지만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인내의 초과분은 어찌할 수가 없어서

조금 서운한 척하는 것도

아무도 모릅니다.

별 하나가 우주에서 사라지면 자욱한 방사선이 그 자리에 남는데

하물며 사랑이 끝나고 사람이 떠났는데 어떻게……

선뜻 그 자리를

떠날 수는 없는 것.



사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때는

나도 잘 모릅니다.



원하는 대로 되는 건 별로 없었어요.

꽃 같던 엄마도 치매로 떼쓰다 정 떼고 떠나버린 것처럼 삶은 '배반의 연속'이었지요.

그런 순간이면 '자기효용 가치'가 뚝 떨어지는 느낌에

주먹 쥐고 불끈,

다이빙대에 올라가 푸른 고래처럼

풍덩 뛰어들어야 했어요.

비늘 사이에 낀 소금기

탈탈 털어내고 밖으로 나오면 멀리 저 너머 그 너머

망원경으로 땅따먹기.

설령 해지기 전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지 못한대도 내 땅을 뺏어갈 사람은 없으니까

‘배반의 관리'에 이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지요.


삶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았어요.

언제부터였을까

손에 쥐고 있던 모든 줄이 물에 녹는 화장실 휴지처럼 맥을 추지 못했던 게.

엄마는 튼튼한 금줄이 썩은 동아줄이 되었는데도 끝끝내 손에서 그 줄을 놓지 않았지요.

내 껍질도 켜켜

벗겨내도 다시

호로록 두꺼워지고 있었구요.

알을 깨고 나와서 새처럼 창공을 날아오르는 건 역시 젊은 데미안에게나 어울리는 일.

늙고 있는 나는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던 오랜 습관과 그만 이별해야 했습니다.



내리막길은 위험해서 내리막인가.

하산길은 특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발밑을 살피지 않다간 들것에 구급차 신세를 져야 하는데,

인생의 내리막길은 그보다 가팔랐습니다.

산을 오를 때 내 발에 밟혀 튕겨 나갔던 돌멩이들이 이 순간을 기다렸던 건지 얼마간 남은

나의 삶을 자꾸 방해하고 있었어요.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지는 노년이란 복병.

다리에 힘이 빠져서 스탭이 꼬이고

간신히 기어서 내려오면 비참한 건지 비장한 건지

경계가 모호(10⁻¹³)한 노후 심리.

중심추를 잃어버려 자꾸 멈. 칫. 주저(10⁻¹⁴)하고 감정의 회복은 더디기만 했지요.


엄마는 검푸른 바다 절벽 대열에 서성대다 달무리 가득할 때 떠났거든요. 산소 행성은 여행자의 자취조차 뭉개버리니까.

백자 항아리를 당신 보듯 애지중지했던 엄마

내 기억마저 멈춰버리는 날에는 조선백자로 둔갑해 장한평 고물상에 팔려나갈 것을 진정 몰랐을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남고 싶어 동동댔던가?

진정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엄마로부터 '사회심리적 독립'

결단을 내려야 했어요.

나는 뫼비우스 도돌이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라서 제대로 이별하기로 했습니다.

불 꺼진 엄마의 깜깜한 눈동자를 생각하면

안전만 쫓던 그 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어요.

현미경을 들고 내 안으로 들어가는 힘을 되살려야 했거든요.

노화 현상을 속수무책의 습격이 아니라

탐구해야 할 질문으로 확 휘어잡고 엄마와 한 판 내기를 벌일 차례가 온 거니까요.


내가 이길지 엄마가 이길지

결과는 나중에 끝점에 다다라서나 알게 되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도전한 만큼 내 집과 더 가까워질 거라는 낭만에다가 나를 걸 기로 한 거예요. 꿈은 꾼대로 이루어질 테니까.

끝에 뭐가 있든 도망치는 건 여기까지.

허리를 곧게 펴고 좁은 방, 청빈으로 들어갑니다.



사실 이 길 끝에서 기적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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