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기부
“엄마. 이제 15번째 가축 노릇 그만하겠어요."
알 속에서 힘겹게 껍질을 깨고 나와 가까스로 땅을 박차고
날개를 펼치려는데
“달걀로 바위를 쳐봐, 그래서 세상이 바뀌겠니?" 엄마가 말했어요.
"왕창 너만 깨져서 평생 외롭게 떠돌이로 살게 될걸. 안 봐도 뻔하지."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두고 봐. 그런지 안 그런지 내 손에다 장을 지지마.” 쐐기를 박아
번번이 주저앉혔어요.
내가 가려던 길은 검증된 길이 아니었거든요.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나는 나니까
나답게 훨훨 날아보자 그랬었던 건데
어느 순간 덜컥 겁이 났어요.
불확실한 운명에다가 한 번뿐인 내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한 도박 같아서 이번에는 내가
나를 주저앉힌 거예요.
그러던 아이가 자라 어느덧 엄마가
그리고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른들이라고 사는 일이든 죽는 일이든 확실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엄마가 권유했던 비행도 가짜라는 것.
두 가지가 분명해지더군요.
엄마는 창공을 날고 싶어 해를 쳐다보는 나를
볼 때마다 다그쳤어요.
이 집 저 집 그 길에서 누가 성공했는지 대보라면서 내 삶을 좌지우지했거든요.
자식을 엄마만큼 위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면서
이 세상에서 더 높이 날아오르라고 부추겼어요.
알고 보니 그마저도 진짜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높이 오른대도 거미가 줄을 타고 널 뛰다가 결국 땅으로 떨어지는
유사 비행(類似飛行)이었거든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엄마의 고집스러운 논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육당하는 느낌이 들어 증명은 엄마가 할 일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어요. (엄마라서)
하지만 내가 나한테 실망하는 날에는 포기된 나의 청춘이 서글픔으로 부글부글 떠오르고 어디를 향할지 모르는 분노로 일그러졌습니다. (이제 엄마도 없는데)
젊었던 내가 늙은 나하고 우연히라도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꿈꿀 수 있는…
그런 날이 있을까 싶지만 나도 엄마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불안 탐지기였던 엄마처럼 걱정부터 앞서던걸요.
세상은 더 복잡해지고 엉뚱한 신호를 보내는 신호등이 자꾸 많아지니까 별수가 없더군요.
자식을 걱정하던 두려움이 실은 자신의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도 모르고
꾸역꾸역 모여든 절벽 끝
노년의 멈춘 심리.
남은 삼십 년 뿌연 대합실 큼큼하고 퀴퀴한 냄새를 쫓으려면 무엇을 깨쳐야 하는 건지 암흑처럼 불길했어요.
삶을 두려워한 엄마
덕분에 나는
삶이 두려워졌습니다.
익숙한 삶이
저문 산을 오르고 또 오르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 딱딱한 계란 프라이 단백질 바위산
체재를 수호하다 재물의 제물이 된 엄마가 거기 있어요.
어차피 엄마처럼 될 바에야
내 안의 무언가가 생명으로써 삶을 날아오르라고 요청할 때마다 알에서 나를 던지고 또 던져
조각조각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차라리 바람처럼 기화(氣化)되어 둥실둥실 날아갈래요.
99.9%가 망가져서 수리도 안 된다며 어두운 무덤에서 엄마가 튀어나와 옛날처럼 또 나를 반대한대도
온전한 1% 나의 몸을 믿고서 끝을 볼 때까지 부딪히겠습니다.
급기야 나의 삶이
내 꼴을 보다 못해
응답하지 않다가는 '저 애를 놓치지 않을까' 위기감을 느낄 때까지 온몸을 던질 거예요.
삶이 저 스스로 내 안에 숨어있는 '위대한 비밀'을 활짝 펼칠 때까지…
그럴래요.
본의는 아니지만 실패를 기부한 엄마
덕분에 나는 아무도 가지 않는 낯선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남은 길이 이것 하나뿐인 데다가
내가 나일 수 있고
어쩌면 승화(昇華) 같은 요행이 기다릴지도…
그것도 끝까지 가보면 알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