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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H Aug 26. 2019

도쿄에서 보금자리 찾기

이해하기 어려운 관행, 하지만 집주인 더러운 꼴은 안 봐도 되는 장점도?


도쿄행을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아무래도 집 구하기가 아닐까 싶다. 뉴욕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같은 조건일 경우 도쿄 월세는 서울 월세의 기본 1.5~2배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1. 동네와 조건 정하기

회사가 도쿄 23구 내에서도 동부에 치우친 탓에 너무 서쪽으로 가지도 못하고, 입사 후 일이 바빠질 것도 생각하면 통근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았다. (이미 한국에서 편도 1시간반 통근을 포기한 전력이 있는 저질체력!) 거기에 지반이라든지 해발고도, 동네 분위기 등 이런저런 조건을 고려해 23구 내에서 회사까지 도어 투 도어 30분 정도 걸리는 동네 중 1차적으로 걸러내는 작업을 먼저 했다. 일본 전역에 각종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각 동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여주는 Hazard map 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홍수, 토사붕괴, 쓰나미, 도로방재 등 각 항목을 누르면 정도에 따라 노란색~빨간색으로 표시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방을 정할 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을 정해야 한다. 내가 제시한 조건은 꽤나 까다로운 편이지만 여성이라면 아마 이 정도가 마지노선인 경우가 많지 않을까.


- 주거환경: 2층 이상, 동향~남향(찾아보면 알겠지만 일본은 서향~북향 집이 정말 많다)

- 보안: 현관 오토록 (잠금장치), 택배박스

- 시설:  1K(주방분리형 원룸), 전용면적 25제곱미터 이상,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어진 건물일 것

- 월세: 관리비 합쳐 최대 13만엔 이하


일본에서 보통 월세는 월급 실수령액의 1/3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월 13만엔은 지금 당장 다달이 부담하기에는 마지노선을 넘는 금액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 번 이사할 때마다 월세 5개월치가 기본으로 깨지기 때문에 2-3만엔 정도 저렴한 방에서 2년 살고 이사하나, 처음부터 2-3만엔 비싼 방에 입주해서 계약을 한 번 연장하나 이사비용까지 합치면 그게 그거다. 이사하면 거지(引っ越し貧乏)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일본에서 2년 이상 거주할 계획이라면 이사 횟수는 최소한으로 하는 편이 좋다.


2. 부동산 예약하고 실물 보러 가기

일본의 부동산은 대개 '관리회사'가 집주인에게 위탁 받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집주인과 같은 건물에 살아도 집주인에게 직접 연락 받는 경우는 드물며 세입자는 관리회사와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집에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는 시설물 (예: 세면대, 변기, 에어컨, 싱크대 등)이 고장났을 때도 관리회사에 연락하면 된다. 그리고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세입자가 살고 있는 동안은 실제 방을 볼 수 없다는 것. 세입자가 퇴거 의사를 밝혀서 부동산에 매물로 올라가도, 세입자가 거주하는 동안은 사진을 찍어줄 필요도 방을 보여줄 필요도 없다. 아니, 아예 요청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전 세입자와 다음 세입자 사이에 텀이 생기기 때문에 '레이킹'이라는 관행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우선 부동산에 방문하기 전에 방문일시를 정하고, 미리 원하는 매물 조건과 입주시기를 메일로 보내놓는다. 부동산 회사에 따라 사이트에서 자동으로 매물 추천을 메일링 해주기도 하지만, 어차피 매물 현황은 매일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약속한 일시에 부동산을 찾아가면 담당자와 인사를 하고 실물을 보러 갈 수 있는 매물을 추리기 시작한다. 사실 내 조건이 조금 많이 까다로워서 (특히 지은지 얼마 안 된 건물) 보러 갈 매물 4개 추리는 데에만 2시간 정도 소요된 듯하다. 이날은 아침 10시에 부동산에 도착해서 매물 4개 보고 다시 부동산에 돌아와 이런저런 상담을 하고 7시가 되어서야 겨우 부동산에서 나왔으니, 한국과 비교하면 참 느린 편이다.


처음 보러 갔던 집이 꽤 마음에 들었지만 더 나은 매물이 없나, 이렇게 덜컥 결정해도 되나 싶은 마음에 한참을 고민했더니 "내일 하루 더 와서 매물 더 보고 결정해라, 그리고 보험드는 셈치고 처음 봤던 집은 신청서를 넣어놓자"고 했던 부동산 점장. 사실 이 방법은 그리 추천하는 방법은 아닌데, 취소하게 되더라도 바로 다음 날 취소할 거니까 괜찮겠지 하고 진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청서 넣어둔 첫 집으로 진행하게 되어서 신청서를 철회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 번 신청하고 이후에 철회하게 되면 해당 관리회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도 있으니 요주의.


3. 계약 절차와 계약에 소용되는 비용

마음에 드는 매물을 찾아서 계약하려고 하면 일명 '초기비용'이라 불리는 목돈이 훅 빠져나간다. 정식으로 계약하기 전에 관리회사에 신청서를 내고 계약에 필요한 돈을 일시금으로 부동산에 지불한다. 부동산에 따라 이 초기 비용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곳도 있으니 이 부분은 본인의 자금상황에 따라 부동산 중개요율과 함께 사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다.


- 월세와 관리비: 계약 당월 일할 계산분 + 다음달 1개월분

- 부동산 중개료: 월세의 50~100% (부동산에 따라 다르다)

- 보증회사 보증료: 월세의 50~100% (세입자의 신원 보증용)

- 열쇠교환비용: 보통 입주하는 세입자가 부담하며, 열쇠의 종류와 갯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 시키킹(보증금): 월세 1~2개월치 (퇴거 시 청소비용을 제하고 돌려준다.)

- 레이킹: 월세 1~2개월치 (집주인에게 집 빌려줘서 고맙다고 주는 사례금)


*시키킹과 레이킹은 각각 월세 1개월치가 보통인 것 같다. 아주 가끔 둘 다 요구하지 않는 매물도 있는데 '사고매물'은 아닌지 확인 필수. 주변 시세에 비해 월세가 저렴한 경우도 반드시!! (여기서 확인 가능하다.)


원하는 매물이 있다고 해서 입주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외국인은 아예 거부하는 매물도 많으며 국적과 비자, 수입에 따라 심사 과정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실제로 꽤 있다. 내 경우에도 한 보증회사에서 연봉은 일본인 평균과 비교해 꽤 높은 편이지만 외국인이고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제출한 서류가 '원천징수영수증'이 아닌 '내정통지서'와 '고용계약서' 였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심사를 거절당했다. 그리고 보증회사에 따라 일본 국적의 연대보증인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보증회사와 관리회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주인까지 내가 살아도 된다고 허가를 내주고 나면 남은 절차는 계약서 작성과 열쇠를 건네 받는 것! 계약서 작성은 입주 허가를 받은 후에 관리회사와 부동산에서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가능하다. 신청서 내는 시점에 이미 희망 입주일을 기입하고, 그 날짜에 맞춰 당월 월세를 일할 계산해서 선지불 하기 때문에 실제 입주는 희망 입주일 이후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월세가 아까우니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최대한 날짜를 맞춰서 이사하도록 하자.


4. 비싸지만 돈 낸 만큼 마음이 편한 도쿄

부동산에 간 첫날 저녁에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집을 비운 일주일 동안 열쇠를 맡겨둔 부동산 실장님이었다. 집주인이 와서 열쇠랑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고. 나는 분명히 집주인에게 말하고 왔다. 그 동안 이 집에 살면서 보안 상 불미스러운 일이 여러 차례 있었으니 부동산 한 군데에만 열쇠를 맡겨놓고 그 부동산 통해서만 방을 보여주겠다고. 그런데 내 말을 오해한건지 부동산에 찾아와 열쇠 내놓으라 장장 한시간 넘게 화내면서 시위를 했다고 한다. 나는 분명 만기 2개월 전에 월세를 입금하면서 문자로 집주인에게 계약 연장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고, 그 이전에도 만기까지만 살고 나갈 거라고 두어 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의 행동은 굼떴고 집주인이 내놓은 부동산에서는 지난 주까지 단 한 차례도 방을 보러 오지 않았었다.


아무튼, 나는 집주인이 전화를 걸고 부동산 실장님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 와중에 공포심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회사에서 돌아왔을 때, 그리고 자고 일어났을 때 현관문이 열려 있던 경험 때문에 주거침입에 민감한 상황에 열쇠 내놓으라 시위하고 있다니 협박으로 느껴졌다. 다시 한 번 상황을 설명하며 ㅇㅇ 부동산 통해서 방을 보여주거나 다음 주에 보러 오시라 부탁했다.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았으므로 내가 원치 않는데 들어가는 건 주거침입이라고도 언급했다. 그러자 집주인은 매달 65만원씩 꼬박꼬박 헌납한 세입자는 '파렴치하고 비협조적인 인간' 취급을 하면서 방을 계약할지 말지도 모르는 사람을 '귀한 손님'이라 지칭했다. 만기 시까지 방이 나가지 않는다면 보증금을 줄 수 없다는 협박과 함께.


나도 최선은 만기 내에 방이 나가는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역시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게 되는 게 사람 심리가 아닐까. 지난 화요일 밤부터 4일째 내 정신은 이미 서울에 가 있다. 어차피 여행하러 온 게 아니니 들뜬 마음이 없기도 했지만 집주인 덕분에 일본어가 들리는 한국에 있는 느낌. 집주인의 협박과 일본 방 계약 절차가 동시에 이루어지다 보니 (물론 부동산 계약에 한해서는) 집주인이 보증금 돌려주지 않으면 어쩌지 전전긍긍 해야 하는 한국보다는 비싼 돈을 치러도 마음 편한 일본이 더 나은 것만 같다.



이번에 얻은 교훈은 한국에서 전월세 계약하고 입주할 경우, 보증금이 소액(1,000만원)일 경우라도 꼭 보증보험에 가입해두자는 것. 입주할 당시에는 집주인이 융자 없이 건물을 매입하기도 했고, '설마 천만원인데 못 돌려받겠어?' 하는 마음으로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예고따위 하지 않고 건물을 팔아버린다. 언제 집주인이 바뀔지 모르고 그 집주인은 빚더미에 앉은 갭투자자일 수도 있다. 세입자 재산 가지고 협박하는 파렴치한일 수도 있다.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보증보험은 꼭 들어두자. (라고 쓰고 알아봤는데 현재 거주 중인 건물은 고시원으로 등록되어 있어 애초부터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한 케이스였다. 다음에 한국에 들어올 땐 이 부분도 반드시 계약 전 확인해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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