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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H Aug 26. 2019

나 자신이 '여행자'임을 인정하기  

김영하 작가 <여행의 이유>를 읽고



김영하 작가는 신간 <여행의 이유>에서 본인을 여행자라고 정의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여행자'의 자아를 지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 곳에 오래 머문 적이 없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낯선 곳으로 떠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면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진다. 6주 간의 유럽 여행을 혼자 훌쩍 떠날 때도, 갑작스레 도쿄행을 결정해버렸을 때도 다들 나에게 "넌 참 대단하다"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해주었다. 남들이 보기에 대단해 보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결정하는 건 아마도, 지금까지 한 곳에 오래 머문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초등학교 때 전학을 한 것만 두 번. 어렸을 때부터 전셋집을 전전한 우리 가족은 한 집에서 2년 혹은 4년, 길어야 6년 쯤 거주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게 당연한 행사였다. 회사 발령에 따라 지역을 옮겨 다녔던 아빠가 있었던 탓에 집 뿐만 아니라 사는 지역도 몇 차례 바뀌었다. 창원에서 태어나 10년을 살았고 소금기 가득한 삼천포의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2년을 보냈다. 그 후 일산으로 올라와 15년을 살았지만 이사를 밥먹듯 해서 여러 동네에 살았다. 지금껏 살아본 집 중에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은 일산 어느 동네의 아파트였다. 전세 계약기간 연장을 두 번 해서 6년 정도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서울로 직장을 다니게 됨과 거의 동시에, 엄마는 일산에서 파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이사 다니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나는 새로 이사한 그 집에서 1년이 채 못 되는 시간을 보냈다. 매일매일 통근지옥에 시달리던 나는 결국 저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집을 나와 혼자 살게 된 후로, 원래 살던 그 집은 더 이상 내게 '본가'가 아니게 되었다. 그저 엄마가 기거하는 '엄마 집'일 뿐이다. 그 집엔 내게 향수를 불러 일으킬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 아주 가끔 엄마 집에 들러 옛날 사진과 앨범을 들춰 보면 추억에 젖기도 하지만 딱 그 정도 뿐이다. 주말에 와서 밥 먹고 가라는 전화에도 나는 멀어서 안 간다고 밖에서 만나자고 거절하곤 했다. 아마 엄마도 대충 짐작은 하지 않았을까. 자취방으로 이사하던 날 잔뜩 쌓인 박스들을 보며 엄마는 나에게 너는 이렇게 나가면 다시는 집으로 안 기어 들어올 것 같다고 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보금자리 없이 떠돌아다니는 노마드형 인간은 아니다. 내 손길이 묻은, 내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나만의 공간을 아주 사랑한다. 다만 그 보금자리와 거취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결정의 순간이 닥쳐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일본으로 이사를 앞둔 지금 불안한 마음도 조금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집주인이 만기가 지나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버틴다면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과 지급명령 신청, 최악의 경우 보증금 반환소송까지 진행해야 하기 때문일 뿐이다. 어디 멀리 미지의 공간으로 떠난다면 모를까, 도쿄에서 꾸려나갈 생활은 서울에서 혼자 살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활물가가 비싸고 서울보다 외국인이 좀 더 많고 들려오는 언어는 일본어에 자동차가 달리는 방향이 다르다는 정도? 첫 두 달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분명 이 도시에 적응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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