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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H Apr 06. 2024

한글은 체계적이지만 한국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끔씩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내가 직간접적으로 창피해지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


한글은 위대한 세종대왕님께서 창제하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체계이다.
한글은 전세계 모든 소리를 받아적을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문자체계이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로 과학적이고 위대한 언어이다.


한국에서 한국인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라면 상관 없다. 하지만 외국에 나와서까지 굳이 말도 안 되는 국뽕에 심취해서 자신의 무지를 자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전에 골프치러 갔는데 한국 아주머니가 있는 거야.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 재밌게 하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가 그러더라고?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고 한국어도 과학적이라서 전세계 모든 소리를 받아적을 수 있다고. 진짜야?


이 말을 듣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물론 한글은 체계적으로 발명된 문자체계다. 하지만 한글을 "가장““과학적인” 문자체계라고 말하긴 어렵다. 무슨 기준으로 그런 비교를 한단 말인가. “가장 체계적인” 문자체계라고 한다면 납득할 법도 하지만.


그리고 한국어를 "과학적인" 언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언어에 과학적이고 말고가 어디 있는가. 모든 언어는 과학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다. 인간이 의사소통을 위해 소리와 제스처를 이용하던 것이 특정 지역에서 특정 언어로 발전한 거고, 그 역시 시대의 흐름 인구 이동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모든 언어에는 그 문화권 특유의 제스처가 수반된다) 결국 문법과 같이 언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무의미하며, 역사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체계적인 언어를 만들겠다 시도 했던 사람들도 모두 실패했다. 문법이 있고서 언어가 성립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있고서 문법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글은 전세계 모든 발음을 받아적지 못한다. 생각나는 대로만 적어봐도 이 정도.

영어 b v f th r
스페인어 rr j  
프랑스어 u r
중국어 ch zh sh z c


그리고 초성+중성(+종성) 으로 구성된 글자가 한 음절인 한국어 특성상 음소 레벨에서 발음을 모방할 수 있더라도, 단어 문장 단위에서 발음을 재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나 예를 들어보면 영어 단어 based. 한글로 적어보자면 베이스드 4음절 하지만 실제로는 1음절짜리 단어다. 비단 한국어 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들이 외국어를 자국의 문자체계, 발음체계로 음차할 때 본래 발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제발 이 글로벌 시대에 국뽕놀이는 좀 내려놓으면 안 될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명한 사람과 시대가 명확한 언어체계임은 마음껏 자랑하되 부끄러운 발언은 넣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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