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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디자이너 Nov 18. 2024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권땡땡 / 커뮤니케이션디자인전공 졸업 '17, 취업준비생


디자인할 줄 아는 게 득인 줄 알았는데 독이었어요.
MD·마케팅 업무만도 벅찬데 디자인 업무가 슬슬 가중되더라고요.
디자인을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걸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작년 9월에 그만뒀어요.
그 후 영어점수를 만들며 3월부터 3개월 정도 취업준비를 했는데
취업하는 게 마치 연애 같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 것처럼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저는 건대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고요. 2년 휴학하느라 졸업을 늦게 해 작년 8월에 졸업한 권땡땡입니다. 졸업한 지 1년이 다 됐네요.


요즘은 뭐 하고 지내요?
취업 준비 중이에요. 이야기 나누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오늘 인터뷰에 왔어요.


제가 도움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인터뷰가 부디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그럼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미술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일상이었어요. 중학생 때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하고 싶어서 드로잉도 정말 열심히 하고 혼자 공부도 했어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패션 분야에는 관심을 잃게 됐지만, 미술은 계속하고 싶어서 고1 가을부터 입시 미술을 시작했어요. 중·고등학생이 미술, 디자인의 세세한 분야와 각각의 분야에서 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아무래도 어른들의 조언에 영향을 받아 결정들이 이루어졌고 이렇게 시각디자인 과에 오게 되었어요. 중간에 현대미술로 진로를 바꾸고 싶었지만 바꾸지는 못했어요.


듣고 보니 저도 생각해보면 시각디자인을 잘 알지 못하고 지원한 것 같긴 하네요. 학교 다닐 때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교에 정을 못 붙이고 둥둥 떠다녔어요. 전공에 대해 감을 잘 못 잡고 교양 수업을 더 재미있게 들었어요. 철학, 여성학,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죠. 그러다 3학년 2학기 때 1년 휴학을 하고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다 왔어요. 도피하듯이 다녀왔죠. 누드 드로잉, 동판화, 브랜딩, 에디토리얼 이렇게 4개 수업을 들었는데, 순수 미술을 하고 싶었던 갈증을 풀 수 있었어요. 에디토리얼 수업에서는 ‘카타르시스’를 주제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진도 찍어서 잡지를 만들었었는데 인터뷰를 하니 그때 생각이 나네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수님이 학생을 평가하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함께 고민해준다는 느낌이 더 강했어요. 물론 상대적이긴 하지만요. 한국에선 동기들과 자주 하던 교수님께 ’까였다, 혼났다’ 와 같은 표현을 쓸 일이 없었다고 하면 와 닿을 것 같네요. 교환학생을 마치고 4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왔어요. 여행하면서 예술학, 사회학에 관심이 깊어져서 한국에 돌아와 관련 수업을 들으러 다니고 공부도 했어요. 안 읽던 종류의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고요. 그렇게 디자인과 멀어져 있다가 졸업전시를 하게 됐죠.


독일에서 돌아올 때 마음이 좋지 않았겠어요. 그러면 다시 디자인으로 돌아와서 한 졸업 전시는 어떤 작품을 했어요?

평소에 하던 생각을 구체화해보기로 했어요. 어느 날 ‘시간이 지나간다’, ‘시간이 왔다.’, ‘시간이 흘러간다.’ 등의 표현이 이질적으로 느껴진 적이 있어요. 그때 시간의 생김새나 모습을 상상해봤던 경험에서 시작했죠. 시간은 서술어에 의해 무한히 다르게 정의되고 상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제가 느꼈던 낯선 경험을 공유해 시간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어요. 언어적 관점이 강한 접근이어서 ‘치환’이라는 방식을 택했죠. ‘時詩’라는 타이틀로 문장의 모든 주어와 보어, 목적어를 ‘시간’으로 치환하고 그래픽과 결합한 시집 시리즈를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마지막에는 한 소설을 정해 치환 작업을 했고 만들어진 새로운 내용으로 구조가 있는 팝업북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조명 인터랙션을 이용한 설치물을 만들어,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원래의 문장 위에 시간으로 치환된 새로운 문장이 겹쳐 보이게 했어요. 예기치 못하게 그 문장을 마주할 수 있게요. 시각화하기까지 정말 괴로웠어요. 시간에 대한 수많은 철학, 과학적 해석을 수집하면서 혼자 상상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건 즐거웠지만 어찌 되었든 디자인과 졸업 전시에 부합하는 포맷의 시각물로 그걸 시각화해야 하는 게 거북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준비가 너무 안 된 상태로 졸전을 했던 거죠. 많이 혼란스럽고 위축됐었어요. 브랜딩이 암묵적으로 필수 과목이어서 더 어려웠던 것도 있어요. 결국엔 브랜딩을 포기하고 그 과목에서 F를 받았어요.


졸업 작품을 실제로 보고 싶네요. 상상하지도 못한 생각인데, 듣고 보니 서술어가 시간을 정의한다는 말이 재밌어요. 그럼 졸업을 한 이후에는 어떤 일을 했어요?

학점이 부족해서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했어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학점 대체 인턴을 하게 됐어요. 졸전 때는 브랜딩때문에 고생하긴 했지만 원래 브랜딩에 관심이 많았어요. 브랜드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배워보고 싶었고 MD·마케팅으로 지원했어요. 디자인할 줄 아는 게 득인 줄 알았는데 독이었어요. MD·마케팅 업무만도 벅찬데 디자인 업무가 슬슬 가중되더라고요. 디자인을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걸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래도 7개월을 일하고 작년 9월에 그만뒀어요. 그만두고 잠깐 영상 스튜디오 제작부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해봤는데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그 후 오랜만에 여행도 다녀오고 가족을 도와 번역도 해봤어요. 그리고 영어점수를 만들며 3월부터 3개월 정도 취업준비를 했는데 취업하는 게 마치 연애 같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 것처럼요.


그러게요. 연애 같네요. 그럼 반대로 어떤 일은 땡땡님을 좋아하고 있는데,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지금 연애하고 싶어 하는 일은 어떤 일이에요?

기획, 콘텐츠, 마케팅 분야를 희망하고 있어요. 사실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이 반복될까 봐 걱정되긴 해요. 처음부터 디자인 업무가 포함된 걸 알고 하면 몰라도 디자인을 할 줄 아니까 시키는 거면 그건 싫어요. 디자인해도 제가 기획해서 할 수 있고, 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괜찮아요. 디자인 업종의 회사에서 기획이나 마케팅 직종으로 일하는 게 지금의 목표에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비슷한 업종이어도 디자이너와 ‘비’디자이너는 평균적으로 삶의 질이 너무 달라요. 그걸 지켜보면서 제 결심도 확고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길게 봤을 때 직업을 하나로 삼을 생각은 없어요. 한 때 미술 과외 사업을 구상해봤던 적도 있어요. 얼마 전에 사주를 봤는데 사람과 얘기하면서 사람을 다루고, 연결해주는 일을 하면 잘 될 거라고 했죠. 그래서 “듀X?” 라고 했더니 바로 그거라고 하는 거예요. 커플매니저 하면 잘 맞을 거래요. 진짜 엉뚱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한 번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직업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고려해요.


‘X오’는 정말 잘 맞을 것 같아요. 혹시 커플매니저로 일하시게 되면 저도 잘 부탁합니다. 그럼 혹시 디자인 분야 외에 관심사가 있나요?

식도락에 관심이 많아서 먹으러 마시러 많이 다니는 편이에요. 블로그도 해요. 혼자 정리하려고 시작했는데, 재미있어서 나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식당과 카페를 직접 운영하는 것도 나중에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에요. 물론 돈 벌고 나서겠지만요. 글 쓰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책과 잡지를 워낙 많이 본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는 다시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나름 진지하게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던 시절도 있는데, 디지털 작업만 하다 보니 그림에 손을 놓은 지가 오래됐어요. 그래서 조금씩 드로잉을 하고 있어요.


디자인을 배운 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이미 너무 체화돼서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어려워요. 더 좋은 안목과 관점을 길렀고, 그로 인해 얻는 즐거움이 큰 것 같아요. 졸업 전에 교수님과 면담하다가 디자인 안 하면 어떻게 먹고살 거냐는 농담 섞인 질문을 하시길래 저도 농담으로 “어휴 어디 가서 누끼 따면 몇 푼이라도 주겠죠”라고 한 적이 있어요. 배우는 동안은 디자인의 기술적 측면을 되도록 지양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디자인을 직접 할 줄 안다는 건 사실 매우 유용하고 쓸모 많은 ‘기술’임을 부정할 수 없어요. 마음만 먹으면 좋은 생계 수단이 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큰 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안녕, 디자이너’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삶에는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어요. 디자인을 안 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해요. 이건 저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저희 연령대가 고민이 많을 시기잖아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불안하고 조급한 감정이 있어서 더욱 다른 사람들의 사례가 궁금하네요.



2018년 5월 29일 사직동 사직커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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