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졸업 '16 / 전략기획자
디자인도 전공이기 때문에 맞지 않음을 알고도
놓지 못한 채 매달린 것을 깨닫고, 자신을 인정하니
가두고 있던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었죠.
이 때문에 몇 년 동안 쌓아올린 노력을 뒤로하고
다른 일을 하기로 선택할 수 있었어요.
디자인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흥미가 없지만,
논리와 전략을 다루는 거라면 해보고 싶었어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들었고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안녕, 디자이너’를 하며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보게 되어 기쁘네요. 함께 미술학원에서 동고동락한 분이시죠.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김지수에요. 졸업하기 전부터 디자인은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른 길을 고민했고, 졸업하면서 디자인은 바로 그만두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PlusX라는 브랜드 전략 및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브랜드 전략기획자로 일하고 있어요. 이제 3년 차가 됐네요. 브랜드 경험이 도출되기까지의 브랜드 방향성에 대한 전략, 컨셉 등을 논리적으로 도출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주요 업무에요. 재미있고 자유로운 생각을 지닌 클라이언트를 만난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요즘은 업무 외적으로 갖는 나만의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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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은 어땠나요?
어머님의 브랜딩 회사를 도와드리던 것의 연장선으로 브랜딩 소모임에 들어갔어요. 원래 기획도 하고 싶었으니까 디자인 분야 중에 가장 맞닿은 걸 찾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브랜딩을 배우면 배울수록 기존에 멋있다고 생각했던 작업들이 브랜딩영역에서 잘 안 나오더라고요. 딱 기획까지만 재미있고 그 이후 이미지화 작업에 흥미를 못 느꼈어요. 만들어낸 결과물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그러다가 우리 과 졸업전시에서 편집디자인을 보고, 책은 1부터 100까지 직접 관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편집디자인에 관심을 두게 되었죠. 타이포그래피 소모임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교내 교지편집위원회에 들어가서 글도 쓰면서 책과 관련된 활동들을 했었어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평일에는 10시부터 6시까지 반반 스튜디오라는 광고대행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반반 스튜디오는 클라이언트가 의뢰하면 광고를 직접 찍기도 하고 바이럴콘텐츠를 만들어 유통까지 하는 일의 범위가 넓은 회사에요. 주로 TVCF를 찍거나 연예인의 메인 화보의 아트디렉팅을 하는 일을 하고, SNS로 화보를 유통,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에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고 있고, 큰 작업에서는 직접 기획과정에 참여하기도 해요. 실무 경험은 처음이라 재미있기는 하지만 매번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고, 작업을 컨펌받는 과정과 그것이 실제로 릴리즈되는 것 때문에 힘들어요. 잘 해야 하고 못하면 혼나잖아요.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심해요. 주말 야간에는 KBS 보도팀에서 기사의 사진을 리서치하는 일을 해요. 기사에 알맞은 사진을 내부 DB에서 찾아 리사이징해 올리는 일로, 사실은 단순 노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픽툴을 다뤄야 해서 디자인전공을 뽑는 자리에요. 실제 보도사진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끼고, 제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보수가 좋아서 행운과도 같은 일자리죠.
직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턴 하는 중에 생각해보니 출퇴근 시간이 무의미하고, 이동시간이나 정신, 체력적인 소모를 생각하면 결국 온종일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유일하게 갖는 내 시간은 저녁 한 끼 맛있게 먹는 정도니까요. 인생에서 차지하는 파이가 이렇게 큰데 그래도 ‘돈을 잘 벌 거나’, ‘재미있어하거나’, ‘잘하거나’, 이 셋 중 하나는 충족해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직업으로 어릴 적 꿈이라던가 사회 정의라던 가를 실현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디자인을 안 하려고 생각한 이유는?
제가 학점도 별로 안 좋고 학교도 열심히 안 다녔지만, 디자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나름 다 시도해본 것 같아요. 디자인, 재미있어요. 그런데 이걸 직업으로 삼으면, 객관적으로 잘해야 하고, 비교해서 잘해야 하고, 성취를 내야 하잖아요. 그걸 생각한 순간부터 흥미가 떨어졌어요. 제 작업이 만족스럽지 않고,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있지도 않았어요. 디자이너가 된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이 있고,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있어서 그것과 관련된 분야와 업종을 가서 경력을 쌓아나가야 할 텐데, 그런 욕심도 없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직업으로 삼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또 휴학하고 일을 하려다 보니 디자인밖에는 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인턴도 하게 된 거고요. 그래도 인턴을 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학교 과제처럼 생각해서 디자인하면 할 수 없겠지만, 내가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분야들, 예를 들면 아이돌 산업이나 요리 쪽으로 디자인 관련 일을 하면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디자인을 안 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고등학교 때 영화를 하고 싶어서 영화과를 선택했지만, 막상 해보니 하고 싶지 않아서 디자인을 선택했고, 디자인을 좋아했는데, 와서 직접 해보니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고등학교 때는 영화를 진짜 못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나리오도 찢기고, 칭찬도 못 듣고. 그런데 디자인은 학교 내에서는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학교 밖으로 나오면 어느 정도 수준은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너무 애매해서 고민이 돼요. 그만두지도 못하고 계속하기도 애매하고. 그래서 디자인은 그냥 보험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요리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요리사와 비교해 잘하는 것은 아니에요. 요리를 안 하는 사람들 틈에서 요리를 하니까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거죠. 고등학교 때 디자인을 안 하는 애들 틈에서 디자인을 잘하는 것과 같은 이치 같아요. 그래도 20대 때 한 번쯤은 주방에서 일하고 싶어요. 글도 쓰고 싶고요. 하지만 돈이 궁하면 또 저의 전공과 인턴 경력으로 어딘가에 취직할 것이고 그게 결국 디자인 일이겠죠? 그런 생각이 드니까 최면처럼 ‘나는 디자인 안할거야’라고 하고 다니는 것 같아요.
디자인 과를 나와서 얻게 된 점은 무엇인가요?
예쁜 게 무엇인지 보는 관점을 얻었어요. 가독성을 좋게 하는 방법, 정보를 잘 전달하는 방법, 기조-주제와 작업을 일치하게 보이는 방법 등 주관적인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예쁜 것을 알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건 제가 어떤 일을 하든지 매우 큰 장점이 될 것 같아요. 디자인이 아닌 일을 하더라도 내가 정보를 보여주고 그것을 취하는 사회에서 살 테니까요. 내가 어떤 것을 봤을 때 ‘이런 식으로 보여줘야겠다.’, ‘이렇게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안녕, 디자이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저는 결국 디자인을 할 것 같네요. 언어로 정리하니까 그냥 저는 디자인을 하기 싫은 거고 디자인을 하자면 또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슬프네요. 이 프로젝트에서 제가 디자인을 안 하려는 이유를 찾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읽고 나서 ‘그래! 이래서 내가 디자인을 안 하려고 한 거야!’라고 저를 설득시키고 공감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으면 해요. 혹은 디자인을 하다가 지금은 안 하는데 디자인은 별로니까 다른 길을 가라는 글이라든지, 재능이 없어서 디자인하기 싫다는 글을 보면 ‘그럼 나는 재능을 찾아서 직업으로 삼아야겠다.’ 전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결국은 ‘디자이너를 이 사회에 늘리지 말자.’, ‘다 같이 디자이너 하지 말자.’ 라는 생각이 드는 프로젝트를 만들어주세요.
2018년 4월 15일 신촌 투섬플레이스에서
<안녕, 디자이너> 세번째 이야기, 제주 이야기 펀딩이 진행 중이에요.
디자인을 전공하고 제주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13명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먼저 만나보세요.
인터뷰레터 <안녕,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전공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요. 고민할 수 있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한 5명의 대답과 두 명의 특별한 편지를 이메일로 보내드려요.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최신 인터뷰를 가장 먼저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