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눌 수 있는 기억은...
서늘한 가을 공기가 느껴지는 날, 납골당 입구는 더 싸늘하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으며 몸을 돌리니, 강한 햇빛이 내 눈을 찡그리게 한다.
“할아버지 왜 안 와?”
“왜 할아버지 안 와?”
막 두 돌이 지난 조카 현이가 납골당에서 절하는 여섯 살 누나 일이와, 여덟 살 사촌 형 헌이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묻는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조카가 예뻐 나는 웃음이 났다.
“할아버지 왜 안 와?” 열 번쯤 물어봤을 때, 남동생이었는지 올케였는지 “할아버지는 지금 못 오셔.” 했다. 조카는 “왜?” “왜 못 오셔?” 계속 물었다.
자꾸 묻는 사촌동생에게 여덟 살 헌이는 “할아버지 이미 오셨어. 흰나비가 되셨다고 했어. 엄마 맞지? 밖에 있을지도 몰라.” 하며 말을 반복하는 현이가 싫은지 나를 쳐다본다.
“응 맞아. 할아버지는 흰나비가 되셔서 우리를 보러 오셔.” 라며 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난 그걸 기억해? 흰나비는 기억나는데 왜 흰나비인지 모르겠네!” 라며 남동생이 소주를 잔에 따르며 말했다.
나는 열 살이었고 남동생은 여덟 살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건 심장마비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좁은 집 마당에서 굿을 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갑자기 돌아가신 아빠의 혼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빠의 죽음을 가장 힘들어했던 건 외할머니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외할머니는 유난히 말이 없는 분이셨다. 그만큼 조용하고 묵묵히 희생만 하는 그런 옛날 할머니 모습이다. 서른 중반의 우리 엄마는 젊었다. 살림만 하던 딸이 하루아침 남편 없는 과부가 되고, 거기에 철 모르는 여덟 살, 열 살 먹은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외할머니 마음이 어땠을까? 이제야 느껴진다. 죽은 사위에 대한 슬픔보다 남겨진 큰 딸이 안쓰러워서, 염려돼서 힘드셨을 것이다. 굿 하시는 분이 참 슬프게도 우셨다. 우리 엄마가 불쌍해서 어쩌냐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굿은 참 잔인하구나!’
아빠는 흰나비가 되었다고 했다. 기억 속에는 그날 흰나비를 실제로 봤던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은 믿을만한 게 되지 못하니 확신은 할 수 없다. 그 뒤로 난 흰나비를 보면 그 날이 생각난다. 막연히 아빠를 떠올린다.
동생은 굿한 날을 기억할까? 묻지 않았다.
30년 동안 우리 집에서 아빠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가는 일은 없었다. 우린 차례로 학교를 졸업했고, 회사에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몇 해 전부터 납골당에 가면 “우리 아이들 잘 보살펴주고 따뜻한 가정 잘 이루게 도와줘서 고마워!” 라며 엄마가 말한다. ‘고생해서 키운 건 엄만데, 왜 엄마는 아빠한테 고마워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가 다 애쓰며 우리 키운 거지. 엄마 고생했어. 엄마 고마워!’라고도 못했다. 대신, ‘엄만 성공한 거야! 아들 딸 배울 만큼 배웠지, 제때 결혼했지, 손주가 벌써 셋이나 된 할머니잖아!’ 다른 걸 못 챙겨주는 죄책감으로 난 이런 얘기를 해 댄다.
동생과 우애가 좋아 친구들과 신랑이 늘 ‘박남매라니깐!’ 놀리곤 한다. 그런 동생과도 나는 아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누구와도 기억을 나누지 않았다. 신랑 하고도. 그런데, 작년부터 아빠에 대해 말을 해야 되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위로하고 울어주는 이가 생겼다.
나는 결혼하고 12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아들 헌이는 여섯 살까지 가족들과 가끔 만났다. 일 년에 몇 주 한국에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가까이 지낼 시간이 없었다. 작년에 귀국을 해서 아빠 납골당에 인사를 드리러 식구들과 갔을 때부터 인 것 같다. 아이는 ‘엄마의 아빠’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즈음 이기도 하다. 납골당에서 인사드리고 나오면서 헌이가 ‘엄마는 할아버지 안 보고 싶어?’ 물었을 때, 나는 머뭇거렸다. 그때 내가 헌이에게 ‘할아버지는 흰나비가 되셔서 엄마를 가끔 만나러 와.’라고 비밀스레 속삭였다. 그 뒤로 흰나비만 보면 아이는 내게 소리친다! “엄마, 흰나비야!” 라며… 가끔 꿈에서도 할아버지를 만나 얘기한다고 알려주었다.
조용한 밤이었다. 책 두 권을 같이 읽고 난 후 자려고 전등을 끄고 누웠다. 헌이가 “엄마, 엄마는 반은 죽고 싶고, 반은 안 죽고 싶지?”라고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알아야 대답할 수 있기에 “왜 그런 생각을 했어?”라고 되물었다. “엄마가 죽으면 아빠를 만날 수 있고, 나랑 있을 려면 죽으면 안 되잖아!” 아이들은 신기하다. 이런 생각도 하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헌이가 다시 말한다. “엄마, 오래오래 나랑 살아!” 하며 흐느낀다. 사랑스러워 꼭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