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래! 후회하지?

우리는 해냈다. 20분의 힘으로...

by 나는 여기


산을 오른 지 10분 즈음 지났을까 헌이가 말한다.


“엄마, 나는 차로 갈래.”

“나는 포기야.”


9월의 끝자락. 아직 푸른 잎이 더 많은 산이 좋아, 헌이의 투정도 기쁘게 받았다.


“엄마, 얼마나 더 가? 엄마, 내려가자!"

“나는 돌아갈래. 난 산책이 싫어. 난 포기야!”


헌이는 포기하겠다며, 강하게 반복적으로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오름의 시작점

나는 집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고, 빨래를 돌리지 않고, 청소기를 밀지 않고, 자연에 나와 있는 내가 기특했다. 축축한 흙내음이, 사스로르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들의 소리가 나를 기쁘게 했다.

심심하지 않은 길은 걷기도 좋았다.


30분 뒤쯤 가팔라지는 산길을 따라, 나의 숨도 거칠어졌다. 다리 근력이 없는 나를 실감한다. 아이의 투정은 잘 들리지 않았다. 나의 촉각은 쿵쿵대는 심장과 무거워져만 가는 다리에 집중되었다.


“엄마, 저 코너에서 김밥만 먹고 내려가는 거야!

엄마, 내 말 들었지? 아빠도 힘들지?”


“엄마, 내가 세 번이나 말했어. 왜 대답 안 해!”


난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힘들었다. 웃음도 났다. 슬프기도 했다. 나의 체력이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50분쯤 오르는 산길은 내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오랜만이었다. 아이는 힘들다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엄마, 그러니깐 내려가자.”


“헌이야! 엄마, 다리가 후둘거려!”

“우리 저기까지 가서 얘기하자. 한 번에 하나씩만 생각하자.”라고 했다. 대답을 미뤄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쉬고 있는 오십 대쯤 보이는 두 분이 보였다.


“선생님, 얼마나 올라가면 간월재인가요?”

“온 만큼 가시면 됩니다. 금방이에요.”

옆에서 조용히 듣고 계시던 부인이

“이 사람 말 믿으면 안 돼요!”

불쑥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인 듯하다. 분명 본인이 원해서 오르는 산행은 아니었다.

순간 내 옆에 서 있는 헌이를 보며 쑥스러운 듯 웃으셨다.

“꼬마 대단하네! 10분만 더 가면 임도가 나올 거야!”


우리가 찾던 두 갈래길이 나왔다. 산을 오른 지 한 시간이 지난 지점이다.

산길로는 안 갈 것이다! 임도로 연결되는 오른쪽 길로 직진했다.


우린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는지 몰랐다. 사전 조사를 하고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작정 올라서 목적지까지 묵묵히 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도 어디로 가는지 정확힌 알 수 없지만, 쉬지 않고 때론 더디게 때로 서두르며 가다 보니 이곳까지 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임도는 아름답고, 고요하고, 쉬웠다. 언제 숨을 헐떡였나 싶을 정도로 나의 에너지는 다시 충천돼 있었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난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사했다. 사는 것도 이런 것일까 걸으며 배웠다.


하지만, 헌이는 힘들었다.


“엄마, 아까 내려갔으면, 지금 우리 집에서 누워있을 수 있잖아!”

“엄마, 나 진짜 포기야!”


아이를 달래야 했다.


“잡기 놀이하자!" 했더니 헌이가 반응을 보였다.


“아빠, 내가 10초 뒤에 아빠 잡으러 갈게.”

“엄마, 엄마가 20초 뒤에 우리 잡으러 와."

“이번엔 엄마가 도망쳐.”


20분을 잡기 놀이로 버텼다.


아이는 다시 지쳤다.

“엄마도 후회하지?”

“엄마도 힘들다면서 왜 안 내려가!”


나는 내가 왜 안 내려가는지 알 수가 없어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이다.


마침, 내려오시는 소녀 같은 아주머니가 장난기 있는 웃음을 가득 담고, 아이에게

“도토리 줄까? 손 펴봐!” 하시며, 곱게 윤이 나는 도토리 세 개를 손에 담아 주었다. 앙증맞은 도토리였다.


아이는 쓰고 있던 파란색 모자에 도토리들을 조심히 담는다. 도토리에게 씌어 줄 도토리 뚜껑 모자를 찾았다. 도토리에 꼭 맞는 사이즈의 귀여운 뚜껑을 구하려 노력했다.


또 20분이 지났다.

내려가는 아주머니에게 받은 도토리

나는 옆에 핀 산꽃을 선물했다. 먼저, 보라색을 그다음에 흰색을 조심스레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히 그 꽃을 아이의 눈높이를 맞춰 주었다.


헌이가 노란색 꽃도 원했다. 노란색 꽃을 찾다 보니, 20분을 버틸 수 있었다.

노란 꽃을 찾는 중

“업어줘!”

“안아줘!”

“이제 진짜 돌아가자.”


“헌이야, 우리 빨간 단풍나무 먼저 찾기 하자.”


또 다른 20분이 지나자, 간월 공룡능선이 가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임도의 마지막 커브를 돌아서니 은빛 억새들이 눈부시게 우리를 맞이했다.

'엄마 아빠는 안 내려갈 모양이야...'

20분의 힘으로 우리는 목표 지점에 올랐고, 이국적인 억새밭이 우리를 기쁘게 반겨주었다. 눈이 부셨다.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페루 마추픽추 오르기'가 떠오른 건 설렘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나의 꿈 조각이 스쳐갔다.


나는 네게 바람을 보여주고, 하늘을 만지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 나는 우리가 추억할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걸어온 삶을 돌아보았고, 잊힌 나의 버킷 리스트의 추억을 떠올렸다.


여러 번 그러하였듯 너를 키우며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오늘도 말이다.

너의 꿈과 나의 꿈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