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허물어지는 마음을 하루하루 다잡는다.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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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책도 읽는 체한다. 내가 큰 포부를 품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큰물을 못 만난 채 좁은 못을 이리저리 맴돌다 고작 작은 미끼에 걸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덩치만 큰 물고기 신세. <21쪽>



다산은 절망하고 있다.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7개월 남짓 머문 장기에서의 독백이 나에게까지 전해져서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높은 자리에서 목숨만 겨우 부지한 채 쫓겨난 곳에서조차 한탄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을 풀 길이 없을 듯하다. 거기다 믿었던 벗들도 등을 돌려 버렸다. 철저히 혼자였고 세상과 떨어진 다산의 글이 그래서 더 고독하다. ‘속도 없이 그들에게 내마음을 다 내준 나의 잘못이 더 크다.’고 반성하는가 하면 ‘내일이 없는데 어찌 내일 계획을 말하겠는가? 술이나 마시자.’며 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나는 지금 구덩이에 빠졌다. 하지만 평지려니 하고 지낸다. 이런 평상심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독서의 힘이다. 책을 읽으며 허물어지는 마음을 하루하루 다잡는다.’고 마음을 끌어 올린다.


‘내가 겪는 시련은 강물 위에 일렁이는 잔물결일 것이다.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북극성이 있는 한, 잔물결에 마음 빼앗기지 않겠다. 나는 바다의 마음을 배우겠다.’고 다짐했던 다산의 유배생활이 강진에서 18년이나 더 이어질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가족들과 생이별해서 아이들이 커나가는 걸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었다. 구름을 보며 ‘잠시라도 고향 집 위에 떠돌며 그리운 가족들 사는 모습 한 번만 보고 왔으면 좋겠다. 소원이 없겠다.’고 할 때는 그가 처한 어떠한 상황보다 가장 가혹한 벌 같았다. ‘본다고 보일 리 없는데, 그저 올라가 본다. 날 저물도록 우두커니 서서 본다.’며 고향집을 그리워하고 ‘무심코 밤톨 하나 입에 넣으려다가 순간 멈칫한다. 아가! 너는 저 먼 하늘 아래 있구나. 깎아놓은 밤톨처럼 어여쁜 아가! 아비도 네가 그립다.’는 문장 앞에선 할 말을 잃는다.


다산에서 머문 기간도 훨씬 길고 그곳에서 이룬 업적들 때문에 장기에서 머문 기간도, 그가 남긴 글도 전혀 몰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었을 마음을 다스리는 다산을 보며 보통의 사람 같다가도 ‘그 성취가 이런 절망을 딛고 나온 것이어서 우리는 그에게 더욱 놀라고 경탄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은 다산을 보며 더욱 경견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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