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어두워지는 저녁 오늘의 죽음이 내일을 열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 즐거운 불안에 대하여.
『늙은 토마토는 고요하기도 하지』중
삶의 온도는 36.5도, 죽음의 온도도 거기서부터 시작된다.『하루살이』중
한낮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고인이 되어버린 이도, 날씨도, 이 모든 상황들이 모두 낯설기만 했다. 현실이 아니었음 싶었다. 하지만 먼저 죽음을 맞이한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눈물로 변하는 와중에도 앞으로 나의 일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왜 두려운 것일까. 먼 훗날의 일이라고 장담하지 못한데서 오는 불안함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놓기가 싫은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나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고, 두 아이가 있는 고인을 떠올릴 때 나의 마음은 참담을 향해 가는 걸 막을 길이 없었다.
죽음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먼 훗날의 일이라 인식하며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앞에 시인은 망설임이 없다. 어설픈 위로도 삶에서 흘러나오는 불안한 징조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런 적나라함이 나를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때때로 회의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색깔이 어둠인 것처럼 그래도 살아봄직하다는 일말의 용기도 솟아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느끼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되새겨 보는 것이 넘쳐나는 서툰 위로 앞에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몰랐다.
‘시인을 따라 우리도 지난 시절의 나에게, 머잖아 잊힐 나에게, 그리고 남은 날들의 나에게 쓸쓸히 인사를 건네보자, 안녕, 안녕이라고.’ 글을 맺은 문학평론가 이경수 님의 말처럼 인사를 건네고 싶어졌다. 특히나 ‘지난 시절의 나에게’ 자꾸 말을 걸고 미화 시키고 회상이 잦은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어졌다. 시집을 덮을 즈음에는, 어둠뿐인 앞날일지라도 아직 살아보지 않았다고, 과거보다 좋지 않을지는 몰라도 살 가치가 없는 건 아니라며 앞전과는 분명 다르게 변덕스런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상한 힘이 있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