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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Sep 08. 2015

책에 대한 두 번째 기억

국어 시간에 읽은 황순원의 <소나기>

두 번째로 기억하는 책에 대한 기억은 중학교 국어 시간에 읽은 <소나기> 입니다. 아직도 생각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소녀가 무가 맛없다며 던져버리자 더 멀리 던져버린 소년. 보랏빛 도라지꽃이 소녀의 죽음을 알리는 복선이라는 걸 증명하듯 비를 맞은 후 보라색으로 변해가던 소녀의 입술. 그 소설이 너무도 강렬하고 사실 같아서 비슷한 단편소설들을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책을 제대로 읽게 된 건 중3 학기말부터였습니다. 이미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로가 정해져버린 저는 시간이 남아돌았습니다. 


인문계를 지원하는 친구들은 이미 학교가 정해진 우리를 약간 경멸 섞인 시선으로 쳐다보았고(그네들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시답잖은 수다로 그들의 집중력을 흩트렸고 급기야 그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반을 임시로 나누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나는 더 우울해져 버렸습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공부를 잘했고 모두 인문계를 지원한터라 나와 시간을 보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우울함을 떨치려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거의 읽지 않았던 책에 대한 관심을 돌렸고 독서록을 기록해 보라는 중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말이 떠올라 그때부터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중 3이던 1996년 11월부터 기록한 독서록


첫 책은 생뚱맞게도 시드니 셀던의 <벌거벗은 얼굴> 이란 책이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집까지 가지고 오기가 귀찮아(국민학교 시절과는 어찌나 대조되는지! 아마도 진로에 대한 심드렁함이 책 읽기에도 나타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집에서는 다른 책을 읽었는데 함께 살던 언니 책장을 어슬렁거리다 꺼내서 읽은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1996년 11월에 쓰기 시작한 독서록은 수기로 750권까지 노트에 기록했고, 그 이후부터는 블로그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게으르던 제가 20년 가까이 독서기록장을 쓰게 될 거라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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