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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Sep 14. 2015

책을 왜 읽으세요?

책을 읽는 진짜 이유

가끔 저희집에 방문하는 지인들이 넓지도 않은 집안 곳곳에 책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며 "이 책 다 읽었어요?" 물으면 아주 당당하게 "설마요."라고 대답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있겠냐고 태연히 말하는 저에게 "이렇게 책이 많으면서 책을 왜 또 사세요? 그리고 왜 그렇게 책을 읽는 거예요?" 라고 물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정말 순수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질문이란 사실을 알고 있지만 무언가에 푹 빠져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질문하는 바람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말 할 기운이 쭉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책에 대한 저의 욕심이 들통 나 버린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요.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꽤 많습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족히 2,000권은 넘을 것이고 벽이란 벽은 온통 책장이 차지하고 있어 종종 일상생활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1단 짜리 책장에 책을 꽂으면서 온 집이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정말 그런 집에 살고 있는 현재 저는 그때 품었던 행복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건 행복은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책이 가득한 집을 바라보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읽지 않는 책이 늘어갈수록 죄책감만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이렇게 책을 쌓아놓고 더디게 읽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읽기를 멈출 수 없는 걸까요? 책에 푹 빠져 지내던 초창기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주 거창하게 대답했습니다. 책을 읽으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간접 경험할 수 있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시간 여행도 떠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좋아서라고 말입니다. 경험에서 나온 사실적인 대답입니다. 그러나 많은 책을 만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은 더 단순명료해졌습니다. 재미있어서 혹은 책이 좋아서라고 말이지요. 이것도 물론 경험에서 나온 대답이지만 무언가 개운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더 많은 책을 갈망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최근엔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는 과정에서 내 안에 잠재해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상처의 실체는 알지 못한 채 책의 다른 역할을 발견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김탁환 작가의 <읽어가겠다>를 읽다 한 문장 앞에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슬픔은 단순히 멀리 두고 극복할 대상이 아닙니다. 슬픔보다 기쁨이 훨씬 좋다고 강조해서도 안 되고, 기쁨에 관한 밝은 책들만 읽혀서도 안 됩니다. (36쪽)


평소에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현대문학이 아닌 고전을 읽는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던 저인데 ‘단순히 멀리 두고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니! 저자는 ‘슬픔’이라고 했지만 제가 피하려고 했던 것이 현실의 ‘슬픔’임을 알고 있었기에 도피행각을 하다 예기치 않게 그 대상과 맞닥트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슬픔’은 과연 무엇인지,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랫동안 피하려고만 했는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문학을 읽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란 의문과 함께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려버렸던 것 같습니다. 내 안에 무엇을 담고 있었기에 나는 피하고 있었고 문학을 방패삼아 우연히 혹은 서서히 극복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조금이나마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슬픔’이라는 실체를 알게 되자 그동안 수많은 책들을 만나왔던 시간들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일이 내게 주어진 숙제 같았습니다.


어쩌다 제가 책을 좋아하게 되고 책에 빠졌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할 순 없지만 책이 내 곁에 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은 늘 하게 됩니다. 나의 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내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가던지 간에 문학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가 읽어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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