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비노는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라고 말합니다. (...)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그러니까 고전이란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 읽는다고 ‘변명’을 하게 되는 책이지만, 처음 읽는데도 어쩐지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11쪽)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칼비노의 말을 빌려 고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묵직하게 다가왔다. 산문집이라고 하기에 가볍게 읽어볼 요량으로 펼쳤건만, 어쩌면 녹록치 않은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하지만 묵직하고 지루한 녹록치 않음이 아니라 깊게 사유하고 책 읽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내 독서의 문제와 방향까지 짚어보는 녹록함이었다.
저자의 글을 읽다 읽어 보고 싶은 책을 열심히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다 문득, 꾸준히 고전 읽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105쪽)’란 문장을 조합해 블로그에 ‘책의 우주, 그곳의 우리’란 폴더를 만들어 고전 읽기를 시작했다. 책 읽는 기간은 정해졌지만 완독보다는 같은 시간에, 함께, 책의 우주를 유영해보자는 의미의 고전 읽기 모임이었다. 블로그라는 조금은 편향된 소통의 공간이긴 했지만 거창하게 일을 벌이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 읽으마 하고 내 책장에 켜켜이 쌓아둔 책들을 한 권씩 꺼내서 읽자는 의미에, 타인의 동행이 있다면 힘이 날 것 같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첫 시작은 칼비노의 말처럼 ‘다시’ 읽음에도 이제야 제대로 읽고 있다고 ‘변명’할 수 있는 책들로 선정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읽고 싶은 책은 “밀란 쿤데라가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라고 정의한, 바로 그 의미를 실감하게” 되는 나보코프의『롤리타』였다. 간략한 줄거리를 알고 있는 터라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밀란 쿤데라와 저자의 말처럼 잠시라도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일단은 끝까지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선정했는데 함께 이 책을 읽는 타인의 북돋음이 아니었다면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기 싫다면 여기서 책장을 덮으시오, 라고 나보코프가 선언’한다는 저자의 말에 휘둘릴 뻔 했다. 여기서 함께 읽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꼈고, 내 나름대로의 도덕적 판단을 내리긴 했지만 끝까지 읽었다. 읽고 나서 다시는 이 책을 재독하는 일은 없을 거라 다짐했지만, 영 내키지 않은 기분이 들어(이 글을 쓰면서 책 내용을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먼 훗날이라도 재독해야 하는 기분이 들어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소설은 소설이 가진 매력 때문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고, 바로 그 매력과 싸우며 읽어나가는 것이고, 바로 그 매력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독서의 목적 따위는 그에 비하면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라든지 ‘어떤 소설은 우리가 읽든 말든 저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소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접근하고, 그것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독자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그 어떤 분명한 유익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 변할 뿐입니다.’라는 문장 앞에서 지금껏 소설을 읽어왔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건 단순히 이러이러한 소설들을 읽어왔다가 아니라, 나는 그 소설들을 읽는 사이에 어떻게 변했는지 그 시간들이 의미한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수많은 ‘내’가 분열했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그 분열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든든했던 감정은 외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소설을 읽는 시간은 오롯이 나 자신과 소설 속의 인물과의 고독한 시간일 때가 많아서인지, 그런 시간을 익히 알고 더 넓은 세계를 알려주는 저자의 너그러움이 표현할 수 없는 감정까지 건드려 위로해 준 기분이다.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때론 숨 막힐 때도 있지만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은 그저 고맙다는 생각도 한다. 그 안에서 헤매는 즐거움을 알고, 나 혼자서 그런 세계를 유영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책의 우주를 만끽할 이유가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