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란 말은, 언뜻 듣기엔 멋지고 좋은 말로 들리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말의 이면에는 문제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지 않고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신자유주의의 책략에 숨어 있다.
그간 나도 나의 문제가 더 크다고, 내가 먼저 스스로 변해야 이런 움직임이 많아져 사회도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평화롭고 메시지는 정확했던 광화문의 촛불을 보면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자각이 그제야 든 것이다. 그래서 참여는 못했지만 촛불을 응원했고 변화를 기대했다. 그간 체념한 체 살아왔지만 바뀔 수 있는 가능성에 기대보기로 말이다. 이런 자각을 하기 전까지 내가 마주하는 대한민국과 이 사회는 불안과 분노, 우울, 희망 없는 미래, 자극적인 소식만 전해주는 언론으로 인해 마음이 피폐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면서도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 아니면 현실 도피인 건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만큼 나와 사회에 대한 경계 없이 불안한 마음만 속속들이 들어차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어떻게든 맷집을 갖고 견디는 것이 정답이다. 꽤 많은 일은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맷집을 무장해제하고 본능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마다 대처하는 상황이 다르겠지만 나는 도피 하고 싶었다. 우울하고 불안하게 하는 뉴스와 정보를 차단하고 굳이 피로감을 늘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 팽배한 사회적 문제와 분위기와 정서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피할 틈도 없이 문제점을 조곤조곤 짚어 나간다. 어쩜 이렇게 정확할까 감탄 하다가도 직면한 현실에 한숨 쉬고, 해결책을 바란 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집단은,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때론 내가 너무나 불완전한 인간(완전하다는 것이 더 이상하긴 하지만)인 것 같아서 꾸지람을 듣는 기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나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힘에 부친다면 여러 방법으로 도움을 청하더라도 먼저는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도피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인정할 때 비로소 과거를 우울하게 반추하지 않고 미래를 과한 희망이 아닌 차근차근 맞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제야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세상은 언제나 나를 불안정하게 흔들리게 만든다. (중략) 이 안에서 개인이 강해질 수 있는 정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 나 한 사람의 생존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자아를 완벽하게 발달시키겠다는 욕망이 의미 없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개인을 통해 시선을 점점 확대해 사회 전체를 파악하고 흐름을 읽는 과정.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사회문제와 이슈들, 그리고 오랫동안 연구되고 있는 인간 정신과 내면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의 잘못을 운운하고 현재를 비판하며 희망 없는 미래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무조건적인 불만과 잘못된 시스템과 불안전환 사회에 대한 비판 이전에 문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걸러짐을 통해 나름대로의 신념과 판단이 선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렇다고 당장 큰 변화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바라는 것도 이상하다. 적어도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가려는 노력. 그런 기준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애매모할 수 있지만 적어도 인간답게 살기를 추구한다면 그런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게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말이다.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적어도 내가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의 시작은 그것부터라고 믿는다. 그럴 때에 각박하고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시스템의 홍수 속에서 그나마 제대로 흘러가만드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