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꼭 되돌리고 싶은 시간.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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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런 상상을 해봤다. 로또에 당첨된다면 무엇부터 할까? 우선 자잘한 빚들을 청산하고 집을 사고 싶다. 지금보다 널찍한 아파트를 사서 거실에 좁게 내 책들을 들여놓지 않고 내 서재를 만들어 그곳을 완전한 나만의 요새로 만들고 싶다. 자동차도 한 대 사고 연수를 받아 운전도 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넉넉히 베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여건이 된다면 공부를 시작해 대학에 가보고 싶다는 상상을 이어가다 피식 웃고 말았지만 만약 내가 미래의 사람과 연락이 닿는다면, 그 사람이 미래의 사람이란 증거로 복권 숫자를 알려준다면 난 과연 예기치 않게 다가온 부로 행복할까?


어느 날 우연히 구입하게 된 노트북 전 주인과 메일을 주고받다 호감을 느껴 만날 약속까지 잡지만 만나지 못한 남녀가 있다. 일 년 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어린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 매튜. 매력적이지만 외로움과 절망을 때때로 조절하지 못하는 와인감정사 엠마. 그들은 그렇게 노트북으로 인해 서로를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라면 흔히 보아온 소설속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분명 약속을 정하고 같은 장소에 도달했음에도 만나지 못한 이유는 일 년의 차이가 나는 그들이 속한 공간이었다. 엠마는 2010년을, 매튜는 2011년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그들이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도 잠시, 매튜에게 긴박하게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엠마가 진짜로 2010년을 살아가고 있다면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으니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아내만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만은 막고 싶었다.


매튜가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 어린 딸을 두고 떠났을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니 가슴에 메어왔다. 나 역시 딸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자식보다 먼저 눈을 감는 다는 생각만으로도 금세 눈물이 차오르는데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그 심정은 오죽할까 하는 궁상에 빠지기도 했다. 호감을 느끼던 남자에서 아내의 죽음을 막아달라며 매달리는 남자로 변한 매튜 때문에 혼란을 느낀 엠마는 일단 그의 아내 케이트를 미행하기로 한다. 그러던 와중에 케이트가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 영상을 찍어 매튜에게 보내지만 그 순간 매튜의 노트북은 고장이 나고 만다. 그 노트북만이 그 둘을 연결해주는 매개물이었는데 그들이 어떻게 될지, 케이트는 과연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 케이트의 더 깊숙한 비밀은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한 호흡에 읽어버릴 정도로 결말을 보고 싶어 안절부절 이었다. 케이트는 계획하고 매튜에게 접근했다. 케이트는 매튜를 헌신적으로 사랑하지도, 어쩌면 매튜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낳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잘못된 사랑의 방식을 제공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 매튜는 케이트가 죽기 전까지 다정하게 만나던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엠마가 케이트를 추적하면서 알아낸 충격적인 사실들은 알지 못한다. 알릴 방법이 사라진 만큼 직접 뛰어들어야 했다. 2010년의 엠마를 알지 못하는 매튜 앞에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목숨이 위험했고 케이트의 잘못된 사랑 방식을 바로잡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미래의 사람이 나에게 로또 번호를 알려주어 진짜 그렇게 된다면 행복할까란 생각으로 이 소설을 되짚어 보았지만 결코 가벼이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먼저는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씁쓸하게 만들었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긴장감을 배가시켰지만 과연 그 모든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 있을지, 남겨진 사람들에게 애잔한 마음도 들었다. 미래에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될 매튜라는 남자를 도와준다면 그의 현재가 바뀔 수 있을지, 만약 케이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매튜는 그 전처럼 행복하며 엠마를 어떻게 기억할지 의문이면서 둘 다 행복할 순 없다는 예감이 엄습했다.


그들을 이어주었던 매개물인 노트북이 망가진 이상 그대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은 위험하고 긴장감 넘쳤지만 매튜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 한 가지만 변경되었을 뿐, 결과로만 보자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케이트의 비밀을 알고 나서 남녀로 보이지 않았던 매튜와 엠마가 다시 남녀 사이로 보일 수 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일까? 특별한 인연이었던 만큼 특별한 만남을 이어갈 거라 생각하니 안심이 되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현실적으로 생각해 매튜와 엠마의 새로운 만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그런 열망이 있을 것이다. 과거,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꼭 되돌리고 싶은 시간.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런 순간이 있는 만큼 깊숙한 곳에 은밀한 비밀도 있는 법! 이 소설은 그런 비밀을 낱낱이 드러낸다. 타인의 비밀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순식간에 점령당했지만 내가 되돌리고 싶은 비밀의 순간이 무엇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늘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지만 결국 앞을 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제목처럼 도달하지 않은 시간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현재에 충실하다보면 내일의 나는 크게 바뀌지 않을지라도, 조금 더 먼 미래는 바뀔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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