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나에게도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할 때가 있었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내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건넬 때가 있었다. 그 사람에게 많은 걸 주고 싶고 오래오래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의 나는 어떤가. 세상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는대로 사람을 조건으로 보고 주기보다 받기를 바라는 것 같다. 결혼을 하기 전에도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인생의 2막을 건너왔건만 지금은 세상의 온갖 때에 찌들어버린 속물인 것 같아 마음이 늘 어지럽다.
누군가에게 나의 소원은 ‘너랑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처음엔 그런 마음을 품었다가도 나에게 오는 것이 없다면 내 마음은 점점 변해갈 것이다. 지금껏 몇 번의 연애를 통해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 영원이라는 건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이 책 속의 까만 토끼는 하얀 토끼에게 그렇게 말한다. 너와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이 나의 소원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하기까지 까만 토끼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얀 토끼와 함께 즐겁게 놀다가도 슬픈 표정을 짓고 하얀 토끼의 물음에도 속 시원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 드디어 하얀 토끼에게 고백을 하고 언제까지나 항상 너의 모든 것이 되어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된다.
두 토끼의 사랑이 확인되었고 확신이 생겨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다. 민들레꽃을 따서 귀에 꽂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그들을 위해 다른 동물들이 축하를 해주었고 그 뒤로 까만 토끼에게서 슬픈 기색을 볼 수 없을 만큼 행복해했다. 책장을 가득 메운 두 토끼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까만 토끼가 슬프면 나도 슬펐고 그들이 하나가 되어 결혼식을 올릴 때면 나도 행복했다. 나는 두 토끼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올린 것 같지 않아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그들처럼 우리도 결혼식을 간략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이상야릇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순수한 사랑을 바라기는 이미 그른 것 같고(^^) 아이에게라면 저런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종종 아이를 꼭 껴안으며 ‘엄마 아빠랑 행복하게 오래 살자! 다음에 학교도 멀리 가지마!’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아이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지금도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하지만 모든 것을 주고 싶고, 항상 곁에 있고 싶은 마음. 두 토끼를 보며 이 마음이 아이에게 부담이 아니라 사랑으로 닿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