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에겐 명확한 꿈이 없다.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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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다 때가 있다. 당장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득달같이 달려들다가도 막상 펼쳐보니 마음이 어지러워서 못한 책. 내 수준보다 높아서 못 읽고 덮어버린 책. 내 생각과는 달리 깊이가 얕아 마음이 머무르지 못해 뒤돌아 선 책. 그런 책들이 아직도 내 책장에는 수북하다. 『오늘, 수고했어요』책 제목에 끌리기도 했고, 글이 길지 않아 펼쳤음에도 너무나 가볍게 책장을 넘기는 나를 발견하곤 다시 덮었다. 스쳐지나가듯 글을 읽고 그림을 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좀 더 묵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꺼내길 여러 번. 마침내 그림과 글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평안할 때 보다 뭔가 고민이 있고 시선을 돌리고 싶을 때 펼쳤더니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있는 듯 했다.


이수동 화가의 그림은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 책으로 엮이기 전부터 보아온 화풍이 주는 푸근함과 짤막한 글은 어느 누구라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 어디서 펼치건 스스럼없이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저자가 남긴 글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았고 나의 느낌을 아무렇게나 대입해도 좋았다. 그림 속의 그녀, 혹은 그를 내가 상상하고 싶은 사람, 내가 경험했던 비슷한 상황과 연결시키는 것도 이 책을 조금 달리 보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이수동 화가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남녀, 그리고 애틋한 마음으로 불리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지나온 옛사랑이 떠오르곤 했다. 나를 아프게 했던 첫사랑의 이면엔 설렘과 모든 걸 주고 싶었던 순수함이 있었다. 그 사람을 잊으려 노력했던 온갖 행위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던 잔인한 말이 실제로 그렇게 되자 이제는 추억 속에 묻히고 말았다. 그때는 지옥 같던 시간들이 지나고 보니 미화되어 저자의 그림을 보면서 희미하게나마 얽혀내고 있었다.


그렇게 불러낸 첫사랑을 시작으로 잠깐이나마 마음을 주었던 이들, 나의 섣부른 마음으로 금방 끝나버린 연애를 떠올리며 지난 과거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만큼 아름답거나 좋은 기억이 아님에도 내 안에 아직도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타인의 그림과 글을 통해 다시 꺼내 볼 수 있음에 적어도 지금은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내 안에 갇혀 나 이외의 것은 보지 못하고 내 세계만 바라보고 있다 생각했는데 나와 얽혔던 누군가를 떠올리자 그간 나는 혼자 살아온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향하고 있는 미래를 상상해보게 된다. 피카소가 그림 한 점으로 집을 샀단 이야기, 작은 마을 483번지에서 화가의 꿈을 키우고 화가가 되었다던 이야기 앞에서 심장이 쿵쾅 거렸다. 자주 마당에 나와 별빛을 보던 어린 아이였던 난 그때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을까? 뭔가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여전히 나는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밤하늘을 보며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설레던 동심은 사라졌지만 앞으로 내가 무언가 될 수 있다는 기대는 존재한다. 50대가 넘어서 처음으로 집을 샀다는 저자의 글을 보며 책들을 넉넉하게 수납할 수 있는 널찍한 집을 갖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하고 상상하니 그것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지금 당장은 이룰 수 없지만 지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나의 꿈을 실현해 나간다고 생각하니 잠시나마 행복해졌다.


여전히 나에겐 명확한 꿈이 없다. 아직까지 막연하게 프리랜서가 되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하곤 하지만 무엇으로 시작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그때부터 나만의 일을 슬슬 시작하고 싶단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아직 조금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 동안 가만히 자리 보존한다고 해서 그 일들이 찾아오지 않음을 안다. 당장은 아니지만 내 안에 일렁이는 이 마음이 사그라지기 전에 조그만 계획이라도 세워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적어도 오늘 밤, 나에게 이 책은 미래를 상상하며 발돋움 할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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