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끝장까지 읽었음에도 뭔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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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를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한 것 같다. 중국에 유학 가 있는 조카에게 이 책을 보낼 테니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책을 읽다가『중국의 붉은 별』을 주문하고, 책 속에 나온 단어의 의미들을 검색하느라 읽기를 멈추고, 내 서재에 중국 역사에 관련된 책이 뭐가 있는지 기웃거리고. 그만큼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고 오해하고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질려하기도 했다. 중국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서도 넓은 땅덩이 안의 수많은 인구, 돈이면 환장하는 모습, 꽌시(연줄) 전쟁, 신뢰와 정조 관념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버리는 것이다.


세 권의 책을 느긋하게 읽기도 했지만 그만큼 여운도 많이 남았고 아직까지 책 속의 이야기들이 불쑥 나를 찾아오곤 한다. 책을 펼치기만 해도 내가 만났던 이야기들이 다시 이어질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한다. 다시 한 번 조정래 작가님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팬으로써 감사한 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는 복잡 미묘한 생각들이 한데 얽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일단 세 권으로 만나는 이야기라 부담이 없었고 중국을 배경으로 한 점,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관찰자의 눈으로 재조명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역사에 취약하고 세계는커녕, 내 주변의 돌아가는 현상도 제대로 관망하지 못하는 나에게 자체만으로도 시야를 트여주었다.


마치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믿어도 될 만큼 생생했다. 일부의 중국만 보고 그대로 믿고 섣불리 판단해버린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중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중국의 이야기가 다 전부인 것처럼 느껴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나빠지는 게 아닌 좀 더 제대로 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기에 더 조심스러워지고 남들이 말하는 중국의 이미지에 쉽게 동조할 수도, 내가 가진 생각을 쉽게 깨뜨리기도 애매한 입장이 되어 버렸다. 분명 지금까지 내가 알던 중국의 모습과 달리 더 깊이 들어가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무어라 선뜻 입을 뗄 수 없는 애매모호함이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간추리고 그들의 사연을 정리하는 것도, 타자의 입장에서 본 중국에 대해 시시콜콜 나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는 것이 세계인데 하물며 숨은 잠재력을 지닌 중국이 현재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어떻게 직시하겠는가. 그렇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진부하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긍정적인 지레짐작은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중, 일 이야기를 하다보면 역사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복잡미묘한 관계 속에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비즈니즈 맨들 사이에서 하필 중국역사로 전공을 바꾼 베이징 대학생의 이야기로 그 중요도를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태백산맥』이나『아리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든든하게 마음을 줄 인물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긴 소설을 읽어나갈 때 나를 이끌어 줄 인물이 있다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고 책을 덮음과 동시에 그들의 안위를 걱정해 줄 수 있는 뭉클한 만남. 그나마 전대광이란 인물에게 미미하게나마 그런 감정을 느꼈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경제와 치열한 비즈니스, 중국의 광활함에 그런 만남을 기대하기가 조금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약간의 자본과 제대로 된 꽌시를 만날 수 있다면 중국에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어이없는 착각이 들 수도 있다. 돈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소설 속에 질리게 등장해서인지 나도 중국에 가면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허영심이 들어앉아 버린 것이다. 그러나 돈을 쫓는 그들에게 부가 주어질지언정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허무하게 다가왔다. 온통 부를 쫓는 사람들 틈에 있다 보니 부를 갖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그들이 축적한 부가 순수한 노동력을 대가로 한 부가 아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제는 물론 현 경제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진지하게 대화할 때도 멀뚱하게 구경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이 나의 무지를 조금이나 깨뜨려 주었던 것 같다. 수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함과 동시에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기 위해 꿈틀거리는 중국이란 나라를 이 작품으로 이해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역사와 경제라는 분야에 무지했는지를 깨달았고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명 이 소설의 끝장까지 읽었음에도 뭔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설의 마지막이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여러 인물로 본 중국과 그 외의 나라들의 모습이 다가 아니듯이 그들 앞에 놓인 있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미래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지만 무관심할 수도 없다. 그들이 힘겹게 살아낸 세월이 나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주어질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내가 관심 없던 세계, 내가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시야는 트였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치열한 정글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내가 겪었던 정글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기도 싫다. 그래서 아직 말도 못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공부를 강요하지 않을 거야. 나쁜 일만 아니면 너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라.’라는 대책 없는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일단은 그것을 찾아 나서는 것이 정글로 향하는 첫걸음, 아니면 정글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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