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에 사회적 문제를 자연스럽게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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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그릇』을 읽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더 읽고 싶었다. 오랜만에 장르소설을 읽어서인지 흥미로웠고 초기작부터 읽고 싶어 이 작품을 골랐다.『모래그릇』이 천천히 촘촘하게 그려나간 소설이라면 이 작품은 축소해 놓은 듯한 분량으로 진행이 빨랐다. 역시나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이야기였고 제목과 잘 맞아떨어지는 추리가 이어졌다.


누가 봐도 명백한 동반 자살로 보이는 남녀의 시신이 바닷가에서 발견된다.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고 청산가리가 든 음료수를 먹은 흔적이 있었다. 남자는 비리 사건으로 떠들썩한 부서의 과장 대리였고 여자는 요정의 종업원이었다. 이 둘이 함께 특급열차를 타는 것을 본 목격자가 있었고 얼마 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둘이 연인사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지만 너무나 명백한 증거들이 있었기에 동반 자살이라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자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1인 열차 식당 영수증으로부터 시작된 의문은 이들이 과연 동반 자살을 했는지까지 뻗어나간다.


유서는 없었지만 누가 봐도 완벽한 죽음이었다. 남자는 비리 수사를 견디다 못해 연인과 함께 자살했을 거라는 추측을 했다. 영수증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묻힐 뻔한 사건이었다. 열차 식당 영수증에서 시작된 의문은 복잡하게 얽힌 기차 노선을 바탕으로 그들의 동선을 파악하면서부터 서서히 풀렸다. 지역과 지역이 얽힌 일본의 기차 노선을 잘 모르기에 마치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형사가 하나씩 풀어 갈 때도 두루뭉술하게 추리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기차 노선이 복병이 되어 안개 속을 거닐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게 만들 정도였다.


동반 자살한 남녀가 과연 함께 역에서 내려 자살했는가를 추적하면서 드러나는 그들의 의문스런 행적을 쫓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목격자들의 증언도 확실하지 않았고 그들이 함께 기차를 탔다는 사실만 정확할 뿐 의문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끈질긴 수사와 탐문 끝에 밝혀진 동선의 허점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제 3자가 개입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어쩌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추적은 목격자가 보았다던 역의 13번 플랫폼에서 15번 플랫폼이 보이는 4분의 공백에서부터 시작된다. 역 관계자도 알기 힘든 4분의 공백은 조작의 냄새가 났고 그 공백을 이끌어내고 목격시키게 만든 장본인인 야스다의 행적에도 조작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나던 당일 정 반대의 장소에 있었던 그의 알리바이는 너무나 정확했다. 그러나 그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가정 하에 그의 동선에 관한 확실한 증거를 파헤치자 서서히 거짓이 드러났다. 정확한 기차시간표와 함께 비행기 노선까지 이용해 사건현장의 정반대편에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던 야스다는 오히려 사건현장에 있었음이 명확해 지고 있었다.


그는 왜 그렇게 치밀하게 동반 자살을 꾸미기 위해 준비했으며 여러 조력자까지 끌어들였던 것일까? 차후에 조사가 이뤄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철저하게 준비한 그였기에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더군다나 형사의 마지막 추측대로 치밀한 준비의 배후에 그의 병든 아내가 더 무섭게 다가왔던 이유도 명확해졌다. 자신에게 불필요한 존재라고 해서 과감히 처리해 버리는 냉정함. 이 작품의 대부분은 ‘왜 이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주목하며 추적해 나가는 것에 대부분을 할애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마지막에 드러나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저자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에 사회적 문제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초로 거론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리 수사가 진행되면 고위층은 살아남고 실무자인 말단사원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자살하는 행태. 거기다 태연히 불륜을 저지르고 싫증나자 간단히 처리해 버리는 비도덕성을 야스다라는 인물을 통해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마스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읽고 나면 씁쓸함이 짙다. 살인사건을 재미로 읽을 수도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을 보니 지켜져야 할 소중한 목숨이 타인에 의해 남발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스스로 정의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 요즘.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잠시 멈춰서서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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