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랄까, 정말로 좋다. 내가 모르는 것을 까놓고 “모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만큼 편한 일도 없다. 그것만으로 수명이 오 년 반 정도 늘어날 것 같다. (62쪽)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수명을 늘릴 것 같다니. 그러고 보면 평소에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모르는 걸 물어올 때면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라는 성의 없는 답변을 하곤 하는데 모르는 걸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용기인지 귀찮은 일을 미리 차단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말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겠지? 별 거 아닌 것 같은 일들이 조금 더 생각해보면 복잡 미묘해 지는 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 것을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보는가, 혹은 여러 가지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는가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는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뭔가 좀 건방진 소리 같지만. (115쪽)
불안. 현재 나에게는 나이를 먹어 가는 게 불안하다. 내 삶도 중요하지만 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 팍팍한 현실에서 잘 산다는 게 과연 뭔지 불안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이 들어감에 따라 할 수 없는 게 더 많아진다는 편견이 쌓여 늙는 것에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좁아져 버린 걸까. 저자의 말마따나 인생의 퀄리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문제는 늘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늘 그렇듯 명확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뿐.
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63쪽)
요즘에서야 겨우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에 대해서 알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역사서를 한 권 읽고 나서 역사에 관심을 갖는 나를 보면서 언어 공부도 하고 싶고, 인문 공부도 하고 싶고, 뭔가를 써보고 싶다는 의욕이 솟으면서(벌써 의욕이 꺾이긴 했지만) 공부는 때도 중요하지만 계기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마음이 학창 시절에 왔다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겠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고 현재라도 이런 마음이 들었다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 같다. 항상 말만 앞서는 나지만 올해는, 이번 달에는, 이번 주에는 정말 뭔가를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다.
하루키 에세이를 읽다 보면 궁금했지만 찾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혹은 알고 싶지 않지만 이런 일들도 있구나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읽고 있을 때는 오호, 하다가도 금세 잊어버리고 말지만 내 마음에 걸려 있는 고민들이 문장으로 나올 때면 마음이 덜컹한다. 그리고 오래 곱씹어 본다. 이미 정답은 내 안에 있는데 행동으로 나오지 않아 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여전히 내 안에서 더 걸러지고 다져져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끔 나를 불끈 일으켜 주는 이런 문장들이 저자의 소소한 이야기를 읽는 중에 불쑥 튀어 나올 때면 조금 용기를 얻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관한 거창한 일들 말고 그냥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이상하게 하루키 에세이에는 그런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