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론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한다. 식힌 보리차 물 냉장고에 넣기, 빨래 개키기, 안방에 아이 침대 들여놓기 등 쉴 새 없이 머릿속은 다음 일을 간구한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집에서 티도 안 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걸까란 의구심이 밀려온다. 일을 할 땐 스트레스 때문에 집 안에 있고 싶고, 집 안에 있을 땐 바깥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란 불안감이 엄습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하지만 하루에도 쉼 없이 뒤집어지는 마음은 붙잡을 길이 없다. 그래도 나는 내가 마음을 먹으면 어느 정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재의 내 모습이 싫다면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점찍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의 푸념과 두루뭉술한 희망을 들려준다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 여기 1960년대를 살아가는 흑인 가정부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 해 본적 있’냐는 물음을 던지는 백인 여성이 있다.
1960년대 인종차별이 공공연히 존재하는 땅에서 살아가는 흑인 가정부들의 이야기.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먼저는 시공간의 거리감 때문이고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분명 그보다 더한 차별이 존재함에도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졌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이야기를 만나는 동안은 불편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하냐는 괘씸한 불평이 쏟아져 나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끈기 있게 이 모든 이야기를 만나고 나니 그 시대를 꿋꿋하게 살아 온 그들에게 애잔한 존경심을 보내게 되었다. 나라면 결코 그 시대와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인내와 용기가 그들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지 않은 위험한 일을 할 때면 주위 사람들이 더 불안해 진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겹기 때문인데 미스 스키터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그랬다. 가정부 아이빌린에게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냐고 물을 때 그녀가 하려는 일이 위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 흑인 가정부를 위한 일이라곤 하지만 그녀들도 꺼려하는 일이라면 과연 그 일은 정당한 것이며 계속 전진해야 하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끈질긴 스키터의 권유와 인터뷰 앞에서 당장 눈앞의 일거리는 사라지더라도 증언으로 다음세대의 처우가 달라진다면 그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당한 불평등과 차별을 모두 알면서도 쉬쉬하는 가운데 그들을 위해 알릴 사람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일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흑인 가정부가 당하는 처우를 생각해보면 스키터의 권유로 인해 증언하고 글로 쓰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백인에게 말대답은 물론 화장실을 따로 써야 할 때도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현실. 화장실을 같이 썼다는 이유로 시력을 잃을 정도로 구타를 당해야 했고, 혹여나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행동과 말을 하게 되면 그 바닥에 소문이 퍼져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을 키워준 가정부 콘스탄틴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믿는 스키터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가 꿈이었던 그녀는 콘스탄틴을 떠올리며 지역 신문 칼럼을 통해 차근차근 이 모든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아이빌린과 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스키터는 한 권의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세 여인이 만나고 대화하고 무언가 흔적을 남겨가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속도는 더딜지라도 생각이 변화되었고 자신을 표현할 줄 알았으며 불행하다고 느끼는 현실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것은 비단 아이빌린과 미니에게 뿐만 아니라 인생의 최종목표가 결혼이 되는 당시의 상황에서 기자의 꿈을 펼쳐야 했던 스키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동기부여가 되고 희망의 끈이 되었기에 그 일을 할 수 있었고 그들은 해냈다. 그들이 한 일 때문에 피부에 와 닿는 불편과 행복을 동시에 누리게 되었지만 그들의 용기에 힘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정부로 그렇게 살아가고, 결혼 잘 해서 아이 낳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여성이 되었을 지도 모를 그들. 처해진 현실에서 멈추지 않고 용기 있게 내 딘 발걸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삶이 어떠할지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지내왔던 삶과는 분명 다른, 조금은 더 희망찬 삶이라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진행 중이었고 지금도 만연한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조금은 경종을 울렸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지금이 더 위험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피부의 색으로 차별을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배경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시대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 가운데는 평등하지 않기에 평등을 간구한다는 모순이 담겨있다. 그런 불평등을 없애는 것. 그 실천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방법은 사람을 먼저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계를 조금씩 허물어 갈 때 모두가 어우러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