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적어도 눈빛이 살아 있어요.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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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호 간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런 사치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할 대상, 그것은 꼭 필요하다. 170쪽


상호 간의 사랑을 하고 있다 믿었는데 나 혼자만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의 절망감. 어쩌면 ‘그런 사치’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더 홀가분하고 더 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랑할 대상’이 ‘꼭 필요하다.’라는 데는 동의한다. 마음을 태우는 절망감 앞에서도 사랑하지 못한 것이 차라리 사랑을 하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게 더 낫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외사랑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변해버린 마음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오해하고 곡해해서 급하게 먹는 사랑이 오히려 더 문제다. 급하게 먹을 이유가 없다면 사랑할 대상을 찾아보는 것. 그것은 건전한 생각이며 행동의 밑거름이 된다.


그렇지만 그 사랑할 대상이 이 미터 이십 센티미터짜리 비단뱀이라면. 그것도 37살의 독신남자가 파리의 한가운데서 비단뱀을 키우고 사랑할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지금이야 반려동물이의 존재가 널리 퍼지고 있는 시대지만 당시의 파리에서 이렇게 특이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뱀을 키우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부터 그 외에 챙기고 수습해야 할 일이 귀찮을 정도로 많은데도 독신남 미셸 쿠쟁은 개의치 않는다. 짝사랑하는 이가 있음에도 소심함 때문에 고백도 못하고 비단뱀에게 애정을 쏟는 쿠쟁.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를 맘껏 비웃을 수 없는 건 그의 고독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혼 전의 외로움은 하소연 할 곳이라도 있는데 결혼 후의 외로움은 가장 가까운 남편이나 아내에게 조차 말 할 수 없다고. 오로지 푸념으로 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로 들리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순간이 있고, 깊은 밤 고독과 마주할 때면 혼자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어쩔 줄 몰라 할 때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데 나 또한 푸념으로 들릴 수 있는 상황이라 열변을 토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쿠쟁 씨를 보고 있자니 그의 고독에 마음이 저릿해진다. 비단뱀을 키우는 기이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그가 비단뱀을 키우는 과정을 함께 하다 보면 대도시의 외로움과 풍요 속의 빈곤을 맛보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단순히 기이한 사람의 기이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지루한 부분 없이 곱씹어서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저자의 명성을 차치하고라도 문장에서 흘러나오는 범상치 않음이 나를 이끌었다. 외람될 진 모르겠지만 한 권의 책을 펼쳤을 때 첫 30페이지를 순조롭게 넘겼다면 그 책은 큰 무리 없이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30페이지 안에서 독자를 이끌어가는 문장의 힘이 거의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30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덮은 책이 허다하고, 30페이지를 너무 순식간에 넘겨 밤새도록 읽은 책도 많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치기어린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은 첫 30페이지 안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고 추켜세우는 작가나 작품이 나에게 모두 맞는 것은 아니지만 온전히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문장에서 느껴지는 비범함 앞에서는 당해 낼 재간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쿠쟁 이라는 독신남을 통해서 현대사회에 만연하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인간관계의 병폐를 너무나 잘 드러내고 있다.


당신은 적어도 눈빛이 살아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아요. 밤중에 차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눈부시지 않게 서로 조심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자, 안녕. 100쪽


몽롱한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유는 쿠쟁 씨와 비단뱀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쿠쟁 씨가 비단뱀이고, 비단뱀이 쿠쟁 씨라는 착각이 일 정도의 난해한 결말은 마치 이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룻밤의 꿈처럼 몽롱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쿠쟁 씨가 비단뱀을 키우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것을 느낀 후라면 이러한 결말이 난해하다고만 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런 가능성을 무수히 가지고 있는 우리가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내면의 저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본 것처럼 개운함과 동시에 은밀한 고백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다 나 또한 쿠쟁 씨의 비단뱀일 수 있으며 그런 비단뱀을 품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존재일거란 생각이 들더라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허물을 벗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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