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비행기를 타던 때가 생각난다. 20대 중반에 친한 친구와 단둘이 떠났던 제주도 여행에서 과감히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늘 배를 타고 갔던 제주도를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설렘도 잠시, 내가 살던 지방 소도시의 공항은 활주로가 짧아 꺾임이 심해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약간의 촌티를 머금은 여행이었지만 단짝 친구와 떠난 제주도 여행은 그야말로 신났다. 여행이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적응할 때쯤 되니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운 여행이었다. 그 여행이 거의 10년 전인데 그 이후로 여행을 위해 과감히 비행기를 탄 적(신혼여행은 제외하고)은 없다. 그래서인지 가끔 공항에 가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떴는데 국제선 비행기 안이고 나는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배경에는 안정된 직장, 집, 배우자 등이 포함 되어 있고 절대 나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고 상상을 해 본다. 훌쩍 떠나고 싶다던 갈망과 모순되는 상상이지만 홀가분하게 떠나 보고픈 마음은 공통분모다. 공항에서 나의 모순된 상상과 달리 저자는 세 도시를 다녀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인도 찬디가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저자가 하고 있는 건축일과 조금의 연관성이 있는 도시들이지만 여행지라고 상상했던 도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듯이 가고 싶은 도시를 배회해야 뿌듯한 기분. 내가 상상해본 적 없는 도시였던 만큼 낯선 곳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욕망, 일탈, 위안이라는 이름과 함께 각 도시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또는 그 도시에 얽힌 건축학적 이야기들. 낯선 도시를 걸을 때의 호기심을 알듯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편하게 거닐었다. 그 걸음이 너무 편해 세 도시의 뚜렷한 경계보다 하나로 뭉뚱그려져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에서 구경하는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내게 낯선 도시가 내 안으로 온전히 들어왔다기보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도시의 느낌을 훑어봤다는 얘기다. 평이한 일상, 약간의 에피소드, 관념이 깃든 찬사들이 오가는 여행기는, 철지난 여행지의 텅 빈 버스터미널처럼 공허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가고 싶은 도시를 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속한 곳을 떠나 다시 돌아오는 것. 단순히 그 사실이 주는 위안도 크다. 모두 현실에 얽매어 떠남을 두려워하지만 자신에게 며칠간의 휴가를 주는 것.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큰 어려움이 아닐지도 모른다. 꼭 먼 곳이 아니더라도 쉼을 위해 잠시 떠나보는 것. 그것이 여름에게 주어진 하나의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