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를 읽을 때 나이 듦을 느낀다. 30대 초반에 나이 듦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우스울지도 모르나 동시를 만날 때마다 두 가지 반응이 또렷하게 온다. 예전에는 동시가 이렇게 좋아질지 몰랐다는 것. 그리고 동시를 읽을 때마다 나이를 잊고 나의 유년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이런 즐거움 때문에 동시를 새롭게 보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다.
엄만 내가 동생과 다툴 때는/ "언니가 돼 가지고 싸다 싸."//오빠와 싸우다 쥐어박혀 울 때는/ "오빠한테 대들기나 하고 맞아도 싸다 싸."//이래도 싸고 저래도 싸고/나는 어찌하면 좀 비싸지나? 「싸다 싸」
이 시를 읽고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 나 공감이 갔다. 동생은 없지만 9남매의 막내인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많이 치였을지 상상이 갈 거다. 막내라서 귀여움 받고 자랐을 거란 말을 많이 하지만 오히려 방목으로 자유롭게 키워졌다. 언니나 오빠에게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어린 나이에 신세한탄도 하고 원망도 했었다. '나는 어찌하면 좀 비싸지나?'처럼 고급스럽게 투정은 못 부렸지만 단박에 어린시절이 생각나 이런저런 추억에 빠졌다.
딩동!/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되도록 천천히 열쇠를 넣고 돌리자/철컥!//또 아무도 없구나! 「아파트 문 열기」 중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혼자서 학교를 오가게 되었다. 오빠를 비롯해 동네 언니오빠들이 모두 중학교에 가자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집과 학교가 꽤 멀었는데 그 거리를 오가며 집에 도착하면 농사일로 늘 부모님은 안 계셨다. 없는 줄 알면서도 괜히 '엄마!' 불러보고 예기치 않게 대답이 들려오면 뛸 듯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혼자서 보내는 시간은 좋아하지만 혼자 남겨진 건 못 견뎌 한다.
햐,/ 요것 좀 봐라.//조그만 돌멩이 밑에/지렁이 한 마리/노란 새싹 하나/몰래 살림을 차렸다.//누가 볼까 봐//얼른/돌멩이를 닫았다. 「돌멩이 밑」
심심해서 돌멩이를 들어본 적 많을 것이다. 땅 위에 있는 돌멩이를 들면 이 시에서처럼 지렁이나 새싹, 작은 벌레들이 나오고 물속에서는 가재나 거머리, 각종 유층들이 나온다. 그런 것을 보면서 돌멩이 밑에 살림을 차렸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이 시를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과 표현이 참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울컥하는 시도,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시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색다르게 만난 시들이 많았다. 시인은 우리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특히 동시를 쓰는 시인은 더 맑고 투명한 시각을 가진 것 같다.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보고 생명이 없는 것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힘. 그 영역은 시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며 밖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른다. 동시를 읽어도 유치하다거나 내가 읽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 탁해질 때마다 정화시켜야겠다는 수수한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