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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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뱀이 나를 향해오는 기분이었다. 이 소설의 진실로 향해 갈수록 차갑고 냉철한 눈빛을 가진 한마리의 뱀이 스멀스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 다가섬이 두려워 때론 책장을 덮어 버리기도 하고, 그녀의 정체가 드러났을 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살고 싶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을 무너뜨리는 일은 절대 이해받을 수 없기에 그녀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연인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런데 그 여인이 그동안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라면? 그 모든 것을 알고 나서도 그 사랑을 유지할 수 있냐는 질문은 잔인한 것 같아 그만 두더라도 진짜 그녀를 알고 싶었다. 이 모든 일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인물 혼마 슌스케는 먼 친척뻘 되는 청년으로부터 그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부상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는 형사였고 조금씩 그녀의 흔적을 찾아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어디서부터 추적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녀의 흔적이 조금씩 드러나자 궁금증이 더해져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던 세키네 쇼코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그 이름을 사칭해 전혀 다른 인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왜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운 채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부모의 사채 빚 때문에 가정은 파괴되고 그 가운데서 평범한 삶을 원했던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소설의 중간에 보면 사회가 어떻게 카드를 쓰게 만들고 빚을 만들어 가는지 상세한 설명을 해주는데 현대의 우리도 올무에 제대로 걸려들었단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로 인해 카드는 물론 절대 빚지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가 생길 정도였다. 그 결과물이 세키네 쇼코로 살아가고 있는 신조 교코라는 여성이었으니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신조 교코를 쫓으면 쫓을수록 그녀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녀가 지나간 자리를 되돌아보면 섬뜩했다. 자신의 신분을 세탁할 대상을 고르고, 행동하고, 위기다 싶을 때 도망치는 모습이 무서웠다. 그 뒤를 혼마 슌스케가 쫓고 있었지만 그의 차분하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의지가 아니었다면 신조 교코의 상황을 이해하고 잡히지 말았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이 지배했을지도 모른다. 자칫 정의가 무엇인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적당히 살아가려는 부류가 있다. 적당주의에 빠진 채 나도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혼마 슌스케의 내면과 그가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면까지 더해 허리를 똑바로 세운 채 이야기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그녀지만 그녀의 가여운 면까지 함께 끌어안고자 하는 혼마 슌스케 때문에 여러모로 이 소설이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 모든 진실에 다가갔을 때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려는 그녀를 만난 이상 그녀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혼마 슌스케는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만난다면 그 모든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줄지 무척 궁금했다. 혼마 슌스케를 따라 신조 교코에게 점점 다가갔던 그 과정이 모두 떠올라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 온, 그야말로 인간이 궁지에 몰렸을 때 끝을 보여준 그녀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그녀의 태도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중략)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고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346쪽)


신조 교코도 이번에는 제대로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일들을 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절대 나오지 않을 뱀이 목숨 걸고 허물을 벗는 것처럼 신조 교코도 목숨 걸고 타인의 삶을 빼앗고 살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녀가 법의 심판을 받는다고 해도 개운한 감정보다 씁쓸한 마음이 더 드는 건 그 원인이 오로지 그녀에게 있지 않다는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삶을 끝내기보다 살아갈 용기를 선택한 방법이 잘못 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이 정해져버린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이 소설을 통해 여러 가지 깨달음이 와 닿겠지만 자신의 삶이 소중하듯이 타인의 삶 또한 소중하고 존중해줘야 한다는 깨달음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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