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던 기운을 모두 뺏겨버린 것 같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읽은 탓도 있고 격렬하게 이어지던 이야기가 느리게 진행된 탓도 있었다. '쥐'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인 만큼 등장인물이라던 지 일련의 사건들이 조금씩 연결되어 있지만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꾹꾹 눌러쓴 이야기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 같아 읽는 내내 가픈 호흡을 자주 달래줘야 했다. 왜 그렇게 답답함을 느꼈던 것일까. 주인공 '나'가 그간의 사건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순간, 나 역시 그 이야기에 갇혀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네즈미의 죽음을 목도하고 기이한 양 사나이를 만나고 행방이 묘연했던 여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모든 일을, 한사람이 받아들여야 해서 더 답답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마음속의 고민과 상처를 담담히 드러냈지만 돌핀호텔을 다시 찾아 한번쯤은 되짚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담담히 드러냈던 마음 가운데는 그 모든 일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앞으로의 방향성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양 사나이를 만났던 허름한 돌핀호텔은 이미 없어지고 그 위에 새로운 돌핀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출발점이 되어야 할 장소는 현대화 되어 버렸고 양 사나이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어디서부터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나'가 우왕좌왕 하거나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늘 고만고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나'에겐 그들이 마치 성큼성큼 다가온 것 같다. 돌핀호텔의 카운터에서 일하는 유미요시, 함께 도쿄까지 동행한 소녀 유키, 하와이에서 만난 메이까지 '나'는 여성들과 좀 더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그 만남들 속에서 '나'는 여섯 구의 백골을 발견하게 된다. 백골이 상징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나'는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단순한 죽음이 아닌 '나'에게 연결된 이야기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이 모든 것을 알기 전의 '나'로 돌아오려는 과정으로 보였다. 그래서일까. 이 이야기를 만나는 동안 배나 힘들고 답답했으면서도 쉽게 간과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목도한 죽음 때문이었다. 연결고리가 하나씩 끊어짐에도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아이로니컬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면 '나'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나가기가 불가능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럼에도 본연의 '나', 현실세계의 '나'로 돌아오게 만드는 존재는 그가 만난 사람들이었다. 돌핀호텔에서 재회한 양 사나이의 역할이 가장 컸다. 자신이 갇혀있는 상황처럼 '나'도 그러한 상황에 맞닥뜨려있기에 양 사나이의 탈출은 곧 '나'의 탈출이기도 했다. 의미적으로의 탈출일지 몰라도 이 소설의 시작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일이 어쩌면 현재의 '나'로 재탈출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이 모든 이야기를 한번에 받아들이고자 해서인지 더 지쳐버렸다. 소설 속의 '나'라면 의지박약, 정신박약으로 절대 견뎌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지쳐버리는데 그게 나라면 충격과 상처,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호함 속에 영영 갇혀 버렸을 것이다.
이로써 '쥐' 4부작을 모두 만났다. 제각각의 이야기로 보아도 무리가 없는 이 시리즈는 하루키 후기 문학을 먼저 만난 나에게 중요한 과정이 되었다. 독특하고 기이하다고 느꼈던 시선을 좀 더 수긍하게 되었고, 저자가 부여한 의미보다 나에게 맞는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나를 깨고 나와야 한다는 의지가 절박함보다 평생 풀어야 할 숙제로 다가오고 말았지만, 끝도 보이지 않던 나의 내면을 거의 바닥까지 내려가 만나고 온 기분이 든다. 다시 천천히 기어 올라와야 나를 만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을 한숨과 한탄으로 채우지 않으려 한다. 적어도 내게 주어진 상황들을 직시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잡아가는 일. 그 과정 속에 꼭 포함되어야 할 일이다.